이 남자, 보기 드문 맑은 눈을 가졌다.
최근 단편영화 ‘오하이오 삿포로’를 통해 건강한 에너지를 선사한 배우 태인호를 만났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자 주인공 ‘모레’. 태인호는 극 중 모레의 유일한 친구인 일본인 조각가 ‘히로’ 역을 맡았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농인들의 소리 없는 소통을 성숙하게 표현해 찬사를 받은 바 있다.
A. 처음에는 소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알아가면서 참 예쁜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영화 촬영 중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장면이 별로 없어서 친해질 기회가 적었죠. 감독님과 사적인 자리에서 몇 차례 만나고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 친해진 것 같아요. 아직도 자신이 꿈꾸는 예쁜 세상 속에서 사는 순수한 친구죠. 굉장히 밝고 사랑스러운 친구라 극 중 모레의 캐릭터와 잘 어울린 것 같아요. 저희 두 사람의 모습이 예쁘게 잘 담긴 것 같아 만족스러워요.
Q. 지금까지 맡은 역할과는 많이 다른데, 작품 선택 동기는?
A.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느낀 건 “와, 정말 예쁘다”였어요. 잔잔하면서도 가슴 따뜻한, ‘소통’에 대한 메시지를 굉장히 함축적으로 담았죠. 시나리오대로만 영화가 나와 준다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영상, 음악, 캐릭터 느낌이 모두 좋았어요. 사실 지금까지는 굉장히 진지하고 좀 무겁고 어두운 캐릭터를 많이 맡았는데 이번 역할은 완전히 달랐죠. 여자 주인공에게 밝은 희망의 빛을 전해주는, 훈훈한 에너지를 지닌 캐릭터. ‘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의외로 하는 내내 즐겁고 편안했어요. 스스로에 대한 도전이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배우로서 연기 스팩트럼이 넓어진 것 같아 자신감도 생겼죠.
A. 조각을 하는 장면은 어느 정도 하는 척만 했고요(하하), 수화는 전문 선생님을 통해 10일 정도 레슨을 받았어요. 실제 농인 선생님이라서 수화뿐만 아니라 표정, 느낌, 가치관 같은 것도 많이 도움이 됐어요. 추가로 영상을 받아 틈틈이 혼자 연습하고 2~3일 간격으로 검사를 받는 식이었어요. 일본어는 직접적으로 하는 신이 거의 없어 간단한 것들만 외웠고, 어떤 농인들이 내는 소리를 배웠어요.
Q. 화상 채팅을 통해 여자 주인공과 교감을 나눈다, 실제 채팅으로 맺은 친구가 있나?
A. 고등학교 때 한창 온라인 채팅이 붐이었는데 전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굉장히 활동적인 편이라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더 좋아했어요. 오히려 그래서 이번 작품을 하면서 설레고 재미있었어요. 첫 경험이니까요. 화상 채팅도 해보니 정감있고 좋더라고요. 요즘엔 어머니와 하고 있죠. 고향이 부산인데 제가 서울에 혼자 올라와 있으니 가끔 어머니와 화상 채팅으로 안부를 주고 받아요.
A. 많은 분들이 단편영화에 대해 편견이 있으신 것 같아요. 단편 영화도 밝고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은데 무조건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 아쉽죠. 워낙 단편 영화는 소개되는 루트나 관객들을 만날 기회가 적으니 쉽게 인식을 바꾸기 힘든 것 같아요. 단편 영화 주연은 많이 했지만 상업 영화에 가면 단역 수준의 역할을 많이 해왔어요. 주변에서 거기에 대한 속상함이 없냐고 많이 묻는데, 사실 별로 그런 걸 못 느껴요. 어떤 영화에서 어떤 분량이든 어차피 내가 해야할 역할은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저 거기에만 집중하는 거죠. 물론 저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때가 오면 그만큼 제가 작품을 선택하고, 경험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는 거니까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특별히 활동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은 없어요.
Q. 열심히 연기했는데 개봉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속상하진 않나?
A. 여러 가지 이유로 찍은 영화가 개봉하지 못하는 경우가 워낙 많아요. 물론 연기자로서 아쉬운 부분도 있죠. 분명 어설픈 상업 영화 보다 더 가치있는 작품들도 많거든요. 하지만 무엇보다 제작자, 감독이 더 많이 힘들죠. 통상 40분 분량의 영화를 찍을 때 일단 시나리오 준비 기간을 제외하면 촬영은 10일 정도 소요돼요. 기간이 짧지만 고뇌의 시간은 오히려 긴 것 같아요.
Q. 고현정‧최민식‧황정민‧이정재 등 톱스타와 작업을 많이 했다. 꼭 한번 호흡을 맞추고 싶은 배우가 또 있나?
A. 한석규 선배님을 꼭 만나고 싶어요. 단역이라도 좋으니 그 분과 눈 한번 마주치는 게 소원이에요. 한 번도 뵙지 못한 분인데 예전부터 제 로망, 닮고 싶은 ‘롤모델’ 이에요. 보는 사람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이미지시죠. 연기하실 땐 어떤 옷을 입혀놔도 완벽히 소화하시는 능력에 연기자 후배로서 경이로울 따름이죠. 그의 변신은 제게 늘 감동을 넘어 충격이거든요.
Q. 혹시 놓친 역할 중에 가장 아쉬운 작품이 있다면?
A. 2007년에 처음 서울에 올라와 영화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어요. 영화 ‘트럭’에서 진구 씨가 맡았던 역할로 처음 감독님이 만났어요. 무사히 오디션을 마치고 희망적인 이야기도 전해 들었지만 결국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기자 kiki2022@mk.co.kr/사진 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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