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가시’의 흥행이 거세다. 개봉 첫날부터 ‘스파이더맨’을 누르더니 4일 만에 100만을 찍었다. 이같은 추세라면 손익분기점(240만)도 빠르게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그 중심에 문정희(36)가 있다. 극중 제약회사 영업사원인 김명민(재혁)의 아내로, ‘변종 연가시’에 감염돼 사투를 벌이는 주부 ‘경순’으로 분해 내공 깊은 연기를 선보였다.
최근 삼청동의 카페에서 만난 문정희는 싱그럽고 유쾌했다. 함께 있는 사람의 엔돌핀도 솟게 만드는 ‘기분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선 실제와 180도 다른 모습이다. 남편(김명민)이 전 재산을 탕진해도, 집에 와서 온갖 짜증을 부려도 답답하리만큼 무던하게 반응한다.
문정희는 “경순은 착한 게 아니라 그냥 현실적인 거다”면서 “답답해 보이지만 현명한 여성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연가시’는 15년차 배우 문정희에게 스크린 첫 주연작이다.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단역 은행원으로 출연한 이후 11년만의 화려한 귀환.
무엇보다 이 영화는 의리와 고마움에서 출발한 작품이었다. 박정우 감독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하겠다”고 했다. 어떤 배역인지, 어느 정도의 비중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감독에 대한 신뢰 하나로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박 감독과는 ‘바람의 전설’(2004), ‘쏜다’(2007)에 이은 세 번째 인연.
“도전할만한 역을 주셨겠지 강한 믿음이 있었어요. 불평 없이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으로 저를 믿으셨나봐요. ‘하자’고 전화를 받았을 때 세 번째 작품이라는 점에 축하 드렸고, 감독님의 의리와 애정에 감동했죠. 9년이란 세월을 함께 했으니까요.”
변종 연가시에 감염된 주부 ‘경순’은 구력이 있는 배우가 아니면 소화하기 힘든 역할이다. 참고할만한 모델도 없는 데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모성애도 표현해야 했다. 문정희는 “그래서 더 매력 있었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고 디테일한 장면들이 ‘경순’을 통해 나오잖아요. 그래서 더 도전감이 나왔어요. 어휴, 예쁘게 보이는 건 진작에 포기했죠. 결혼 10년차 주부라 모니터 확인도 안했어요.”
무엇보다 육체적인 고행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한 겨울에 생수통 6개 분량의 물을 단숨에 들이키며 ‘물고문’을 당했다.
“겨울에 찍었는데 ‘이런 게 익사구나’ 싶더라고요. 분장을 했지만 턱이 떨리고 얼굴이 까매지더군요. 이상한 무언가가 발동하는 것 같았어요. ‘슛’이 다 무섭더라니까요.”
‘생수통’ 신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수용소 장면이었다. 수용소 신은 아이들과 뱃속에 연가시만 있는 처절한 상황이었기에 밀도 높은 내면연기가 필요했다.
더 신이 났던 건 극중 남편 김명민 때문이었다. 호흡은 기대 이상으로 편안했다. 문정희는 10년차 부부로 김명민과 티격태격 하는 부부의 일상을 연기했다.
“‘강마에’ 때문인지 카리스마 있는 선배라는 선입견이 있었죠. 또 ‘조선명탐정’을 보면 깨알같은 재미도 있고요. 나름 긴장을 하고 만났는데 툭 편하게 하시는 거예요. 제가 준비해 간 것을 던졌을 때 편하게 받아주셨어요. 역시 베테랑이구나, 괜히 ‘본좌’라는 얘기를 듣는 게 아니구나 싶었죠.”
함께 출연한 이하늬와 김동완의 연기와 열정을 보면서도 새삼 놀랐단다. “하늬씨는 착하고 똑똑한 친구에요. 동완씨는 아이돌 가수 출신이지만 (연기를) 너무 잘하더군요. 두 배우에게 감사해요.”
하지만 그에겐 숨을 가다듬고,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까지 있다. 문정희는 “현재를 열심히 살면서 나를 단련시키면 ‘기회’가 오지 않겠냐”고 했다.
“배우이길 떠나 현재가 제일 중요해요. 아픈 것도 잘 아프면 의미가 있더라고요. 이 세상에 나쁜 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크게 성공하고 싶거나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보다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 현시대에 책임감을 갖고 연기하고 싶어요. 작품 속에 잘 녹아들게 하는 배우였으면 해요.”
30대의 능선을 넘고 있는 이 여배우의 40대가 기다려진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향희 기자 happy@mk.co.kr/사진=팽현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