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후 주로 드라마에서 활약한 성유리가 선택한 ’대놓고 코미디’ 장르물이라는 점에서, 또 명랑소녀·캔디 이미지가 강했던 기존 이미지와 180도 달라진 도도 시크녀로의 변신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성유리에게 각별하다.
"평소 코미디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었고, 이러한 장르의 작품을 해본 적이 없어 생소하긴 했어요. 그래도 코미디니까, 즐기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 보니 너무 어려운 거에요. 촬영장 분위기도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 웃음이 가득하진 않았고 굉장히 진지하고 치열했죠."
2008년 ’쾌도 홍길동’ 이후 4년 만에 다시 만난 강지환에 대해선 "정말 목숨 걸었구나 싶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독하게 마음 먹은 상대 배우는 성유리에게도 더 많은 욕심과 열정을 갖게 해 준 동력이자 든든한 파트너이기도 했다.
덕분에 성유리의 첫 등장은 강지환의 리얼 노숙자 분장 못지 않게 파격적이다. 레이디 가가를 연상케 하는 금발에 선글라스, 여기에 진분홍색 미니원피스까지. "처음엔 뜨악했다"고 고백한 그는 "스스로도 적응이 안 돼 창피하고 부끄러웠는데 그나마 좁은 엘리베이터 씬이라 마음 놓고 해보고 싶은 걸 다 해봤다"며 웃었다.
실제로 고영재 캐릭터에는 성유리의 아이디어가 상당부분 투영됐다. "보이시한 디자이너, 욕쟁이 디자이너 등 다양한 캐릭터를 연구했지만 차철수(강지환)와 상반된 매력을 보여주자는 점에 착안해 다소 전형적일 수 있는 하이톤의 과장되고 오버된 제스처의 디자이너를 구상해봤어요." 다행히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도 썩 괜찮다.
영화 속 고영재(성유리)에게선 언뜻 배우의 이미지가 오버랩된다고 하자 재치있게 컬러풀한 답변을 내놓는다. "제 안에서 이중적인 면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어요. 까칠하고 톡톡 튀는 반면, 여린 부분을 지닌 영재처럼요. 다만 영재가 보라색 같은 느낌이라면 전 노란 빛, 상아색 같은 느낌이랄까요?"
상아색. 왠지 딱 어울린다. 문득 원조 걸그룹 핑클로서 전국 각지 수많은 남심을 설레게 했던 ’요정’ 성유리의 모습이 머리 속에 스쳐지나간다.
"데뷔 초엔 남성 팬들이 표현을 많이 안 하셔서 그런지 그렇게 인기가 많단 생각을 못 했어요. 당시 인기가 대단했었다는 얘길 주위에서 듣다 보니 요즘에야 비로소 실감하고 있어요. 망가진 모습을 보일 때면 ’제발 그런 모습 보이지 말라’ 하시는데, 왠지 재미있기도 하고요."
"평소엔 둥글둥글한 편인데 일할 때만큼은 민감해지고, 예민하고 독해지는 것 같아요. 지금은 제 이름에 대한 책임감도 커지고 욕심도 더 많아졌죠. 점점 까다로워지는 것 같아요. 안 그렇게 생겼는데 독하다는 얘기도 듣곤 하죠.(웃음)"
인터뷰를 준비하며 "왜 나는 대표작이 없을까" 생각해봤다는 성유리. 남모를 고민도 많았을 터. 하지만 힘든 과정을 딛고 단단해졌기에, 지금 이 순간 더 아름답게 빛나는 건 아닐까.
"어느새 연기한 지 10년 됐구나 싶어요. 이전까진 계속 연기가 내 길이 맞나 고민했었는데, 이제 조금 여유가 생긴 듯 싶어요. 연기를 계속 하고싶다는 생각이 이제야 비로소 들기 시작했죠."
그래서일까. 지금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단다. 마치 모범답안처럼, 하지만 진솔하게 "지난 10년보다 앞으로의 10년이 더 기대되고 설렌다"고 말하는 그녀는 영원한 요정에서 여신으로, 하지만 이젠 그 모든 타이틀이 불필요한 ’여배우’로의 진화를 어느새 마친 듯 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 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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