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열리고, 수선집 재봉틀 소리와 재단사들의 가위소리가 시장을 가득 채웠다. 전국 3대 시장 중 하나인 대구광역시 서문시장에서 4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킨 사람들이 있다. 수선골목이 바로 그곳이다.
옷도매 시장과 인접해 있어 옷 치수를 줄이고 늘이는 단순 수선에서, 헌 옷을 새 옷으로 바꾸는 리폼까지 주문도 다양하다.
오랜 세월 단골도 많이 생겼다는 김명란 씨는 20세에 결혼해 시아버지가 하던 수선일을 물려받았다. 처음 수선 일을 배울 때는 실수가 잦아 손님에게 새 옷으로 물어주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3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옷이라면 못 고칠 것 없다는 수선의 달인이 됐다.
뒷골목 2층은 맞춤복을 만드는 양장 기능사들의 공간이다. 마치 70년대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이 골목은 기성복이 익숙한 젊은이들 눈에는 생소하다.
컴퓨터가 아닌 연필을 깎아 디자인하고 손수 재봉질을 하는 광경까지, 세월이 지나면서 찾는 이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패스트패션’이라는 말은 수선골목에서 통하지 않는다. 살짝 찢어지거나 유행이 지났다고 버리는 행위는 있을 수 없다. 찢어진 곳은 꿰매 입고 유행이 지난 것은 고쳐 입는다.
시내에서 양장기능사를 하다가 맞춤복 수요가 줄어들어 수선으로 업종을 변경했다는 터줏대감 이혜도 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양장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대구에서 섬유산업이 활성화하던 시절이다.
이 씨는 그 경기 좋았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지만 수선된 옷이 주인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 병원에 왔던 사람이 완치 되어 나가는 것 같아 기분 좋다고 말한다. 50년간 옷을 만들고 고치면서 이제는 사람을 봐도 그 사람이 입은 옷만 보인다고 할만큼 수선은 그에게 천직이 되었다.
양장 골목에서도 오영식 씨의 작업실은 유독 작았다. 팔 하나만 뻗으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될 정도다. 답답할 만도 할데, 정작 그는 본인의 작업실이 서문시장에서 가장 큰 곳이라 생각한다.
오 씨는 작업실에 밥솥과 TV, 직접 만든 운동기구에 세계지도까지 붙여 놓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허름하고 작은 공간이지만 양장기술자의 자부심을 품고 있는 그에겐 세상에서 가장 큰 작업공간이다.
‘내 이름’을 내걸고 나만의 명품옷을
무엇보다 그녀는 이곳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 매장을 여는 꿈을 꾸고 있다. 중년인 그녀에게 양장골목은 종착역이 아닌 꿈을 이루기 위한 정거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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