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나면, 그날 바로 슬픔을 실감하진 못하잖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느끼게 되죠. 소중함, 허전함, 아쉬움 같은 감정들을…. 작품과의 이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KBS 정통 복수극 ‘적도의 남자’ 20회의 대장정을 마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준혁은 이같이 답했다. 강인한 외모와 달리 부드러운 감성이 느껴지는 답변이었다. 화면을 통해 접한 냉철한 카리스마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예의바른 태도와 잔잔하면서도 정갈한 말투, 수줍은 과묵함에 알 수 없는 평온함이 느껴졌다.
‘적도의 남자’는 뜨거운 욕망을 가진 네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이준혁의 입대 전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적도의 남자’는 그의 배우 생활에 큰 성장 판이 돼 준 계기가 됐다. 그간 ‘시티헌터’, ‘수상한 삼형제’, ‘나는 전설이다’ 등 다수의 작품을 통해 얼굴을 알린 그이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명품 배우로서의 입지를 완전히 굳힌 셈이다. 이례적으로 작품에 임하는 내내 그의 감정연기에 대한 시청자의 극찬이 끊이질 않을 정도였다.
“작품에 들어가기 전 어느 정도 입대를 결정한 이후여서 각오가 남달랐죠. 물론 군 입대에 대한 부담감 보단 매 작품을 시작할 때 오는 부담이 더 컸어요. 다행히 이번 작품은 유독 많은 분들이 좋은 평과 따뜻한 응원을 많이 보내주셔서 매 순간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극 중 이준혁은 서울지검의 스타 검사 이장일 역을 맡았다. 전교 1등을 놓쳐 본 적 없는 수재 장일은 신분상승 욕구는 강하지만 갑갑한 상황에 늘 불만을 느끼는 인물. 결국 아버지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분신 같은 친구인 선우(엄태웅)를 처절하게 배신, 고독한 비밀을 안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그는 첫 악역도전인 만큼 보다 완벽한 ‘장일’을 표현하기 위해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 그는 “비주얼 적인 부분도 신경을 많이 썼다”며 “뱀파이어처럼 보이고 싶었다. 과거에 고착돼 있는 인물이다 보니 감정이든 뭐든 뭔가 애매하게 보이길 원했고 여성스러웠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유난히 치열했던 지상파 3사 수목극 전쟁. ‘적도의 남자’는 꼴찌로 출발해 1위 선두를 꿰차는 반전의 드라마를 연출하는 데 성공했다. 탄탄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명품 열연들이 조화를 이룬 결과였다.
“물론 좋았죠. 그만큼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니까요. 지상파 3사 프로그램이 모두 완전히 다른 장르였기 때문에 (역전이)가능했던 것 같아요. 사람의 심리를 깊게 파고들고, 논쟁을 즐기는 시청자라면 더 재미있게 보셨을 것 같아요.”
“말 그대로 쿨 했어요. 현장 분위기는 시청률과 상관없이 항상 편안하면서도 잔잔했어요. 기본적으로 배우들이 워낙 말수가 적었고,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항상 에너지를 아껴야 했어요. 자신의 역할에 묵묵히 최선을 다할 뿐, 특별히 시끄러운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아 정말 프로답다’ 이런 느낌이랄까요?(웃음)”
오는 6,7 월께 입대를 앞둔 그이지만 특별히 후회되거나 아쉬운 부분은 없다고 했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데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추억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굳이 아쉬운 걸 꼽자면 영화광임에도 불구, 한동안 영화를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계속 변신을 추구해왔던 것 같아요. 운 좋게 많은 작품들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하고 싶은 작품, 배역들을 할당 받아 어느 정도 바람을 이뤘고요. 앞으로 시청자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관객들이 그 작품의 장르에 맡는 감정을 충실하게 느낄 수 있도록요. 제가 나오는 신이 항상 즐거웠으면 하죠. 슬픈 작품엔 눈물을, 코믹한 장면이라면 웃음을 줄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인간 이준혁요? 물론 멋진 남자가 되고 싶죠. 행복, 그리고 사랑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어느덧 그와의 인터뷰 시간이 모두 지나갔다. 당분간 화면을 통해 그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남았지만, 다가올 미래에 더 큰 성장을 예약해둔 그이기에 가뿐한 걸음으로 나설 수 있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기자 kiki2022@mk.co.kr/사진 팽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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