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성읍민속마을은 1984년 중요민속자료 188호로 지정됐다. 360여 채의 초가집과 낡고 오래된 풍경이 발길과 눈길을 붙잡는 특별한 공간이다.
지금이야 하루 평균 1만 5천여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명소가 됐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도 이곳은 우리네 평범한 고향이었고 주민들에게는 여전히 삶터이다.
8살 때부터 어머니한테 오메기술(좁쌀로 만든 술) 담그는 법을 배우며 자랐다는 오메기술 기능보유자 김을정(88세) 할머니는 평생을 오메기술과 함께 했다. 허나 요즘 할머니의 오메기술을 찾는 현대인들은 많지 않다. 편한 삶과 작업 방식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김 할머니의 오메기술은 서서히 잊히고 있다.
해질녘, 성읍 마을 어멍(어머니)들은 신주단지 모시듯 잘 싸맨 물허벅을 들고 회관으로 모인다. 매주 월요일은 물허벅 장단에 맞춰 전통 민요를 연습하는 날이다. 물허벅은 물동이를 뜻하는 제주 항아리를 말한다. 예로부터 물이 귀했던 제주에서 물 긷는 일은 온전히 여자의 몫이었다.
밭일 하랴 아이 보랴 집안일 하랴 수십 번씩 물동이 지고 나르랴 오늘날 제주 물허벅 장단엔 고된 삶을 살아야 했던 제주 어멍들의 한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작진이 찾아갔을 때에도 어멍들의 서글픈 소리가 성읍 민속마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성읍 민속마을에서 제 2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문화해설사로 활동하는 40대 후반의 젊은 어멍 장춘자(49세)씨는 누가 봐도 제주도 토박이 같지만, 사실은 경북 예천이 고향이다.
애정이 깊어 이곳에 보금자리를 틀었지만 처음에는 지네와 각종 벌레, 섬사람들의 배타적 성향에 힘들어하던 소심한 여인이었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노력하니 이제는 마을 사람 모두가 가족이나 다름 없는 이웃이 됐다. 지금 장 씨는 마을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는 제주 어멍으로 살고 있다.
치열한 경쟁사회, 늘 성공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지쳐 살던 신용현(37세)씨도 있다. 과거 그는 지친 마음을 치유하고자 바다를 건너왔다. 신 씨는 민속마을 초가집에서 살겠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고, 결국 마을의 빈 초가집에 들어와 주민들을 도우며 커피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성읍민속마을을 방문하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것은, 어쩌면 마음의 고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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