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는 25일 특보를 통해 권재홍 앵커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이번 인터뷰는 권 앵커가 지난 16일 퇴근하던 중 파업 중인 기자회 소속 기자들과 충돌, 30분 가량 차량에 감금당한 사건과 관련해 노조 측이 ‘헐리우드 액션’이라고 주장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진행됐다.
-그날 밤에 있었던 퇴근저지 상황에 대해 설명해달라.
▲지난주 수요일(5월 16일) 저녁, 뉴스데스크가 끝난 뒤 배현진 앵커, 황헌 보도국장과 함께 현관을 통해 퇴근할 때 로비와 현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파업 참가 기자들이 각종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나는 밖에서 대기 중이던 승용차를 향해 이동했고, 이때 나를 보호하려는 청경들과 구호를 외치며 따라오는 기자들이 뒤섞인 채 차량 쪽으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어둠속에 발밑이 잘 보이지 않아 계단에 왼발이 급하게 디뎌지면서 왼쪽 허리부분에 충격을 느꼈다. 떠밀리다시피 승용차에 타게 됐고 그 후 20여분 동안 기자들에게 에워싸여 차안에 갇히게 됐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차를 막아서며 마이크로 고함을 지르고 카메라를 들이대며 차를 막아서는 바람에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입었다. 가슴이 옥죄어들며 머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겁이 났다. 정신적으로 충격을 입을 때 극심한 두통이 동반하는 증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또 그 증세가 도진 것 같다는 우려에 극도의 공포감에 휩싸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적 불안에 몹시 괴로웠다.
-후유증으로 입원했는데, 의사 진단은?
▲퇴근 저지 시위에서 벗어나 집에 돌아와 급한 대로 두통과 울렁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진통제를 먹고 잤다. 다음날인 금요일 아침 여전히 두통이 심해 아침 임원회의에 참석을 못하고 오후에 출근했다. 왼쪽 허리 통증이 있었지만 참을 만하다고 느껴졌는데 문제는 두통이 더욱 심해지고 어지러움과 구토증세가 심해졌다. 상비약인 청심환을 먹었지만 증세가 가라앉지 않아 뉴스투데이 앵커를 맡고 있는 정연국 부장에게 몸이 안 좋으니 빨리 코디에게 전화해 의상을 준비하고 데스크 진행을 대신해 달라고 부탁했다. 지금 기억으론 저녁 6시 전후가 아닐까 생각된다. 증세가 심상치 않아 주치의 선생님이 계신 여의도 성모병원에 전화해 상황을 얘기하고 다음날 특진을 예약했다. 이날도 집에 있는 상비약을 먹고 잔 후 다음날 병원에 가서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 진료를 받고 입원을 했다. 허리 통증은 발을 헛디딜 때 오는 일시적 근육통임으로 근육 이완제를 먹고 휴식을 취하면 별 문제 없지만 정신적 충격으로 오는 “긴장성 두통”은 약물치료와 안정이 급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게다가 두통으로 인한 오심과 울렁증, 탈진증세가 심해 입원치료를 받았다. 현재는 퇴원해 약물치료를 하며 안정을 취하고 있다.
-노조에서는 신체접촉이 없었다며, ‘헐리우드 액션’이란 말까지 했었는데?
▲노조원들에 의해 상처를 입은 사실은 없다. 다수에 떠밀려 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발을 헛디딘 것이 전적으로 내 잘못이라면 그것 역시 내가 감당할 몫으로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물리적 타격만이 폭력인가. 기자들이 보도본부장을 차에 가둬놓고 퇴근을 저지하며, 카메라를 들이대며 고함을 지르며 정신적 충격을 가한 행위는 과연 정당한 것인가. 그 정도로 충격을 입을 만큼 심신이 약한 게 문제라면 나는 아무 할 말도 없는 건가. 만약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이 뼈가 부러졌다고 그렇게 뼈가 약하냐고 몰아 부치는 거와 무엇이 다른 걸까.
이번 사건 전에도 파업 중인 기자들은 보도국에서 농성을 하다가 뉴스데스크 뉴스 진행을 하러 가던 나를 향해 피켓을 흔들고 함성을 지르며 시위를 벌이곤 했다. 스튜디오 안에서도 그 고함 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가슴이 두근거려 뉴스진행이 힘겨울 정도였다. 그런 상황이 누적되면서 참기 힘든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왔다. 차라리 외과 수술로 고칠 수 있는 외상이라면 더 없이 감사하겠다.
-이전에도 한 번 뉴스 진행하다가 도중에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는데, 건강상의 문제는?
▲사람마다 몸과 마음에 가장 약한 부분이 있다고 본다. 지난해 7월 뉴스데스크 방송 도중에 두통과 현기증, 구토증세로 방송을 중단하고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다. 당시 집안에 매우 불행하고 슬픈 사건이 발생해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나를 치료한 여의도 성모병원 박모 박사님은 정신적 충격이 신체에 미치는 정도와 상태는 사람마다 편차가 매우 크다며 내 경우는 스트레스가 뇌신경 압박으로 이어진 거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4주 동안에 걸쳐 약물치료를 진행해 회복됐었다. 이번에 내가 겪은 충격과 증상도 지난해 여름의 상황과 유사한 것으로 진단 받고 치료중이다. 지금 상태는 계속 약을 먹어야 두통과 불안감이 가라앉는 상태다.
▲송곳이 심장을 찌르는 고통을 느끼고 있다. 저마다 가치관과 이념, 판단이 다르겠지만 과연 이런 상황까지 맞이해야 하는지, 가슴이 아프다. 그날 한 후배기자가 마이크를 잡고 “왜 우리가 곧 승리하는데 경력기자를 왜 뽑냐”고 외친 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수십 명의 기자들이 폭탄 문자를 보내며 “경력기자 채용 결사반대”라고 주장했다. 왜 경력기자를 뽑겠는가. 여러분의 일터인 보도국, 거기에서 만드는 MBC뉴스 시청률이 추락하고 있는데 어떻게 바라만 보고 있겠는가. 파업 중인 기자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일터라고 하지만 나를 비롯해 지금 보도국에서 뉴스를 제작하고 있는 동료들 또한 보도국은 소중한 터전이고 자부심의 현장이다. 하루하루 뉴스가 처참하게 망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그냥 쳐다만 보고 있으란 말인가. 뉴스 시청률 1% 복구하는데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겨운 노력과 시간이 걸린다는 걸 파업하는 자들 스스로 잘 알면서 이렇게 MBC뉴스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건가. 겨우 기자 20여명으로 뉴스를 꾸려 가는데, 어떻게 저질 뉴스라고 비판할 수 있는 건가. 무엇보다 그런 억지가 너무 가슴을 친다. 노조가 파업 풀고 올라올 때까지 기자 충원하지 말고 뉴스가 망가지든 말든 그대로 방치하고 즐기라는 건가. 나를 비롯해 지금 보도국을 지키고 있는 보직간부들과 기자들은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 4월 총선방송에서 그렇게 무참한 패배를 경험했으면서 이제 올림픽마저 포기하고 영원히 3류 방송으로 전락할 수는 없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 모두의 보도국이고 우리 모두의 MBC뉴스다.
-현재 건강 상태는?
▲심적인 고통이 너무 크다. 지금도 파업 중인 후배들이 빨리 복귀해서 얼굴 맞대고 좋은 뉴스 만들기를 고대하고 있다. 더 이상 얼굴 붉히며 싸우고 싶지 않다. MBC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놓고 노조원들이 직접적으로 신체적 위해를 가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내가 사건을 일부러 꾸며낸 것처럼 호도하고 소송까지 제기하는 파업 기자들을 보면서 참혹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편 MBC 기자회는 24일 오전 언론중재위원회에 MBC 사측을 상대로 정정보도 및 2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MBC 기자회·영상기자회 소속 기자 140명은 “지난 17일 MBC '뉴스데스크'가 톱뉴스로 ‘권재홍 앵커가 퇴근길에 차량 탑승 도중 노조원들의 저지 과정에서 허리 등 신체 일부에 충격을 받아 당분간 뉴스를 진행할 수 없게 됐다’고 보도한 내용은 명백한 허위 왜곡 보도로 MBC 기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소송 이유를 밝혔다.
박성호 기자회장 등 기자 140명은 신청서에서 “파업 기간 중 진행되고 있는 시용(試用) 기자 채용에 반발해 권재홍 보도본부장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기자들과 권 본부장 사이에 신체 접촉이 전혀 없었고, 이는 당시 촬영한 동영상 원본에서도 명확히 확인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동영상에는 권재홍 본부장이 청원 경찰들에 둘러싸여 넉넉한 공간을 확보한 채로 승용차에 타는 모습이 담겨 있다”며 “마치 노조원들의 폭력에 의해 권재홍 앵커가 심각한 부상을 입어 뉴스 진행을 하지 못하게 됐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대화를 요구하는 후배 기자들을 폭도로 몰아간 악의적 보도”라고 강조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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