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트DJ, 한국 일렉트로닉 음악씬을 만들다
“스무살에 처음 이태원 나이트에서 DJ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땐 그냥 음악이 좋아서 했던 일이었죠. 당시 제가 살던 곳이 홍대였고 디자인을 전공한 탓에 홍대에 작업실을 마련했던게 처음 홍대에서 클럽을 시작한 계기가 됐어요. 일단 그곳에서는 나이트 음악이 아닌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틀 수 있었거든요. 그렇게 1999년도에 처음 101테크노라는 클럽을 오픈했죠. 거기에서 친구들과 모여 음악 틀고 놀았던게 저의 제 페스티벌이었어요.”
초창기 홍대의 클럽문화는 대부분 지하실이나 창고, 작업실에서 열리던 소박한 모임에서 시작했다. 상수도, 발전소, 명월관, M.I 같은 초창기 홍대 클럽들의 대부분이 비슷한 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당시의 클럽의 형태는 진정한 의미의 파티(Party)였다. 친한 사람들이 새로운 사람을 데려오면 그 사람이 그 모임(Party)의 새로운 친구가 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홍대에 어느 정도 클럽문화가 싹트기 시작할 2000년도 지인이 청담동 쪽에 새로운 형태의 바를 운영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당시 강남은 홍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거든요. 퓨전재즈 같은 음악이 나오는 라이브바가 성행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제가 그곳에 DJ 박스를 만들고 하우스 음악을 트는 곳으로 꾸미는데 도움을 줬죠. 청담동이 홍대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거예요.”
이곳에 만들어진 홍대 스타일의 클럽은 당시 강남 사람들에게 문화적 충격이었다. 특히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며 한 대표가 컨설팅했던 클럽은 소위 대박이 났다. 이후 청담동 일대에 본격적으로 대형 클럽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해외 유명 DJ들이 초빙됐고, 클러버들의 니즈(Needs)에 맞는 파티가 기획됐다. 자연스럽게 파티플래너라는 직업도 생기고 전문성도 갖추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일렉트로닉 씬의 저변이 마련된 셈이다. 한익수 대표 역시 청담동에 엔서라는 대형 클럽을 오픈했다.
“사실 요즘 홍대 클럽 문화는 본연의 색을 잃었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인 것 같고요. 대형화 되는 클럽씬의 자본경쟁에서 밀려난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대중들에게 새롭고 실험적인 시도들, 신선한 자극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홍대출신’인 그가 홍대에서 완전히 등을 돌린 건 아니다. 그는 2010년 홍대에 맨션이라는 유니크한 형태의 클럽을 오픈해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 클럽은 청담동 퇴폐문화의 온상?
홍대와 청담동 일대의 클럽은 이제 우리시대 젊은이들의 문화를 대표하는 곳으로 자리매김 했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여전히 클럽문화에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진다. 퇴폐적이고 범죄의 온상이라는 것. 몇 해 전 인터넷에 크게 화제가 됐던 ‘청담동 클럽 사진 유출’ 처럼, 클럽들은 기성세대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한익수 대표는 청담동 클럽의 이 같은 문화가 “사실이지만 진실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두 가지 정도 재미있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첫 번째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어느정도 수준까지 뿌리 내렸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젊은이들이 노는 문화는 예전에도 지금도 마찬가지였어요. 단지 예전에는 어떻게 노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이 그 안에서 노는 사람들뿐이었다면 이제는 그 정보를 밖에 있는 사람들도 알 수 있게 된 거죠. 어른들이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지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보게 된 거에요. 자극적인 일부 만요.”
청담동 클럽사진이 화제가 된 건 그 ‘정보’ 유출 과정에서 생긴 해프닝이다. 실제로 ‘전체 정보’가 아닌 ‘일부 정보’가 확대 왜곡된 것. 실제로 청담동 클럽들은 소수의 특권 계층 젊은이들만 갈 수 있는 곳도, 이들이 방탕하게 놀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도 아니다.
“두번 째는 클럽 등 젊은이들의 문화는 그 세대의 보편적인 정서를 반영한다는 거죠. 학점에, 취업에, 직장에 시달리면서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20대가 주말에 한껏 멋 부리고 와서 미친 듯 노는 곳이에요. 일상에서는 그 답답함을 풀 곳도 신들의 열정을 분출할 곳도 없다는 거죠. 젊은 친구들이 열심히 노는 건 맞아요. 하지만 그 사실만 보고 있지 그들의 진실은 못 보는 경우가 많아요.”
실제로 불법적이고 퇴폐적인 문화는 기성세대 쪽에 훨씬 더 다분하다. 밀폐된 공간에서 음주를 하며 성매매까지 이뤄지는 유흥주점은 분명 30~40대 이상의 기성세대 문화에 가깝다. 적어도 사방이 뻥 뚫린 클럽은 그럴 여지가 없다는 것이 한 대표의 설명이다.
“5천년 전 고서에도. 써 있다잖아요. 요즘 애들이 문제라고. 세상은 늘 젊은 사람들의 힘으로 바뀌고 있어요. 끊임없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낼 테고요. 앞으로 클럽문화도 지금과 전혀 다른 식으로 바뀌겠죠. 분명한건 예나 지금이나 자신을 망가트리면서 까지 문화와 여가를 즐기는 사람은 없다는 거죠.” 결국 어른들의 걱정일 뿐이다.
○ 음악 페스티벌은 공연사업이 아니라 레저사업이다
한익수 대표가 2000년대 중반부터 집중하고 있는 사업은 대형 음악 페스티벌이다. 2006년 처음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온 것이 계기가 됐다.
“펜타포트와 함께하며 쌓은 노하우로 2009년도 일렉트로닉 페스티벌 글로벌 개더링 코리아를 주최했죠. 프로디지, 언더월드 같은 세계적인 뮤지션들을 무대에 세웠어요. 저한테는 꿈의 뮤지션들이었어요. 말로 할 수 없는 기쁨이었죠. ‘이제 다 이뤘다, 끝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시작이더군요.”
한 대표는 이후 베이스먼트 젝스, 데드마우스, LMFAO 등 세계적인 일렉트로닉 뮤지션의 내한공연을 주최하며 동시에 썸머 웨이브 페스티벌, 레인보우 페스티벌, 서울 일렉트로닉 뮤직 페스티벌, 슈퍼소닉 페스티벌 등 대형 음악 페스티벌을 만들어 자신의 역량을 집중했다. 그의 음악 페스티벌에 대한 철학은 명확했다.
“페스티벌은 공연사업이 아니에요. 레저사업이죠. 연인끼리 캐리비안 베이 수영장에서 수영복을 입고 윌 아이 엠(블랙 아이드 피스 리더)의 노래를 듣거나 녹음이 우거진 남이섬에 텐트를 치고 누워 제이슨 므라즈 음악을 즐기는 거죠. 이제 라인업에만 의존하는 음악 페스티벌의 시대는 갔다고 봐요.”
특히 그는 자연이 주는 일탈에 관심이 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제 도시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다보니 자연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나 동경이 분명 존재하는 것 같아요. 저부터가 오랜만에 나무와 숲이 있는 곳에 나가면 갈비뼈가 쫙 열리는 느낌을 받거든요. 여기에 내가 열광하는 뮤지션이 있다면? 말이 필요없는 낙원이죠.”
단독공연을 제외하고 대형 페스티벌을 5개 이상 주최한 VU엔터테인먼트는 올해 매출을 120억 정도로 예상한다고 했다.
“아직 새로운 아이템들을 계속 만들고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라 수익이 크진 않아요. 한번 큰 페스티벌을 할 때 마다 휘청휘청 하죠. 손해 볼 때가 더 많고요. 그래서 저를 공연계에 좀비라고 부르더군요. 어찌 저리 안 죽냐며. 하하”
나이트DJ 출신으로 클럽이라는 공간을 통해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문화지형도를 바꿔놓고, 레저형 음악 페스티벌이라는 새로운 페러다임을 '죽도록' 만들고 있는 공연기획사 대표의 모습은 좀비 보다는 불사조에 가까워 보였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사진 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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