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의 모든 것’(감독 민규동)를 통해 희대의 카사노바로 돌아온 배우 류승룡(41)이 외로움에 대해 이같이 고백했다. ‘배꼽 빠지는 코믹 작품이지만 사실 인간의 외로움에 대한 현실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배우 류승룡도 고독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리고 그는 “작품 속 두현(이선균)처럼 20대 치열한 사랑은 물론 모든 것은 소멸한다. 또 누구나 죽는다”며 인생의 외로움, 슬럼프, 권태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읊었다. “늘 당황하지 않으려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 여행이든 독서든 나만의 치유책을 찾는다. 배우라는 직업은 평균 3개월에 한 번씩, 한 작품이 끝나면 매번 실직한다. 작품 하나 하나가 끝날 때 마다 마음을 다스리며 어느새 나도 성숙해지는 것 같다”고도 했다.
특히 류승룡이 연기하는 ‘카사노바’는 뭔가 다르다. 춤과 요리는 기본, 수준급 외국어 실력에 여자의 마음은 귀신처럼 안다. 마초 적이고 영악한, 여자 등쳐먹기를 일삼는 못된 카사노바가 아닌 여자라면 누구나 마음을 내려놓고 기댈 수밖에 없게 만드는 포근함을 지닌 비현실적인 캐릭터.
“내가 두현이었다면, 19금 스릴러가 됐을 것”
워낙 세 배우가 파격적인 변신과 완벽한 호흡을 선보여 이보다 좋은 캐스팅은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만약 역할이 바뀌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질문에 그는 “지금과는 완전 달라졌을 것”이라며 “일단 장르는 스릴러, 등급은 19금으로 바뀌었을 거다”고 통쾌하게 답했다.
“재미있는 신이 많았지만, 현장성에 충실했죠. 오히려 NG는 없었어요. 한두 번 반복해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그림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선준이와 ‘이대로 쭉 가야한다, 끊기지 말자’ 일종의 암묵적인 약속을 한 거죠. 각자의 몫을 정말 잘 해준 것 같아요. 누가 대신할 수 없을 정도로요.”
그가 뽑은 최고의 장면은 극중 정인과 두현이 춤추는 장면이다. 서로 다른 심리 상태로 발을 맞춰가며 춤을 추는 위기의 부부. 그는 “두 사람이 아주 어색하게 춤을 추는 모습이 슬프면서도 참 예쁘더라”며 “순간 ‘이게 바로 영화의 백미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촬영 당시로 돌아간 듯, 잠깐 회상에 잠기더니 그가 후배들에 대한 극찬을 늘어놓았다. 그는 “선균인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남자다. 수정인 소탈하고 인간적인, 누구보다 사랑스럽다”며 “우리 셋 모두 극중 캐릭터와 비슷했던 것 같다. 애초부터 이들에 대한 편견은 없었다. 작품을 하면서 정말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아마추어처럼 왜 그래”
사실 그의 화려한 변신술은 예전부터 입증된 바다. 어떤 영화에서 무슨 역할을 하던 소름끼치는 연기력을 선보였기에 캐릭터는 곧 그의 이미지가 됐다. 오글거리는 사랑 고백도, 앙증맞은 애교도 서슴지 않은 이번 카사노바 연기 또한 관객들에게 굉장히 깊은 인상을 줄 것 같았다.
그는 차기작인 ‘조선의 왕’에서는 성기와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매번 이렇게 확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어려움은 없나’라는 질문에 그는 “왜 그래, 아마추어같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 성기는, 제게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캐릭터가 아니었기 때문에 고민을 정말 많이 했고 수위 조절도 힘들었어요. 오버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분명 그게 다가 아니죠. 코미디로써의 역할과 지심을 들여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 공존했어요. 비현실적인 캐릭터지만 관객들에게 공감을 줘야 했고요. 분명한 건 시나리오 상 보다는 더 재미있게 표현됐다는 거죠.”(웃음)
업계에서 정평 난 ‘천상 배우’라는 그의 수식어가 새삼 참 잘 어울리는 타이틀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정말 억지스러운 잔인함, 불필요한 자극성을 지닌 캐릭터만 아니라면 어떤 역할이든 선을 긋지 않는다”며 완벽한 배우의 종지부를 찍었다.
“인생 최고의 운명, 바로 내 아내”
이번 영화 촬영 중 안타까운 일이 발생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카사노바 성기에 빙의돼 한 참 코미디 연기에 빠져 살아야 할 시기에 장모 상을 당한 것. 그것도 아내의 유혹을 의뢰하는 두현을 바닷가에서 만나 몸싸움 하는 장면으로 카사노바가 본격적으로 일에 개입하는 중요한 대목이었다.
그는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 예정대로 촬영을 진행했다. 그는 “배우라면 누구든 그랬을 것”이라며 “나의 아내는 내가 지금과 같은 스크린 배우 류승룡이 아닌 연극을 하며 아무 것도 없던 시절에도 사랑해주고 아껴준 사람이다. 모두 이해해줬다”고 했다.
소문난 애처가인 그는 “집에 가면 밖에서 있었던 일을 오목 조목 잘 이야기 한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늘 소통하려고 한다. 가장 기본적인 거니까”라고 말했다. 여느 스타 배우답지 않게 그는 시간이 날 때면 제법 아이들과도 잘 놀아 주고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극 중 성기는 두현의 의뢰를 받기 전부터 정인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는지도 몰라요. 자살하려는 자신을 구해준 여자니까. 내 인생의 최대 운명은 바로 제 아내죠. 아내와 만났을 당시 난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인간 류승룡을 온전하게 봐 준 여자죠. 첫 눈에 반한 건 아니지만, 10년 넘게 안 학교 후배였어요. 카사노바 성기처럼 아내에 대해 모든 걸 알진 못해요.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의 아내가 내 운명이란 건 안다는 거죠.”
성기처럼 여자의 마음을 홀릴 모든 걸 알진 않지만 그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진심을 아는 배우였다. 그가 “작업의 기술 같은 건 모른다. 다만, 내가 아끼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잘 들어주려고 한다. 사소한 것에 신경써주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배려다”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기자 kiki2022@mk.co.kr/사진 팽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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