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언제는 예상 외로 편안하다더니…다 뻥이었어, 요런 변덕꾸러기들!”
영화 ‘아이들’ 이후 딱 1년 만이었다.
고백컨대, 류승룡은 첫 인터뷰를 했던 배우였다. 그래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내겐 더 특별한 배우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예부 기자들 사이에선 약간은 어렵고, 때론 작품 속 캐릭터에 따라 까칠하게 다가올 수도 있는 배우였다.
‘최종병기 활’, ‘고지전’, ‘아이들’ 등의 일련의 작품을 통해 워낙 강렬한 연기를 선보여왔던터라, 그가 내뿜는 카리스마만으로도 쉽게 긴장을 풀고 만날 수 없는 배우였다.
그런데 이번엔 어딘가 많이 모자라는 ‘허당 카사노바’ 장성기로 분했다. 춤과 요리는 기본, 수준급 외국어 실력에 여자의 마음은 귀신처럼 아는 희대의 카사노바다. 마초 적이고 영악한, 여자 등쳐먹기를 일삼는 못된 카사노바가 아닌 여자라면 누구나 마음을 내려놓고 기댈 수밖에 없게 만드는 포근함을 지닌 비현실적인 캐릭터다. 귀여운 애교와 오글거리는 사랑 고백은 순수해 보이기까지 한다. 17일 개봉한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다.
이어 나의 긴장했던 기운을 느꼈는지 “워낙 배역에 잘 빠져 살아서그런 지 이번 작품 인터뷰는 유난히 유쾌하게 응하시는 것 같아요. 이전에는 워낙 심각한 캐릭터가 많아 좀 무거웠는데…”하며 안심시켰다.
이날 하루에만 잡힌 인터뷰는 총 5개. 그가 나를 알아볼 확률은 0%였다.
사실 첫 인터뷰 때는 굉장히 떨고있는 내게 “지금 취조하세요?” “천천히 하세요, 릴렉스~” “처음엔 다 그렇죠”라며 가벼운 농담으로 긴장을 풀어준 그였다. 내 기억 속에 그는 ‘까칠함’ 보다는 배려심이 깊은 배우. 초짜의 질문 하나 하나에도 성심성의껏 답해준 그였기에 다시 꼭 만나고 싶은 배우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추억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워!”하고 큰 소리를 치며 나의 등짝을 확 내리쳤다. 바로 류승룡이다. 나도 모르게 “아이고, 깜짝이야!”하고 응수했다. 그가 승리의 미소를 띄우며 “아, 놀랬구나아”라고 한다.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분명 영화 속 장성기와 똑같은 말투, 그 목소리였다.
그가 다시 실내에서 짧은 사진 촬영을 진행했다. 한껏 포즈를 취하는데 파리 한 마리가 날아들어 ‘위이잉’ 했다. 거슬린다. 사진 기자가 ‘악!’ 하고 카메라를 내리면서 쫓으려 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파리를 향해 분노의 발차기를 날렸다. 순식간에 인터뷰 현장이 웃음바다가 됐다.
사진 촬영이 끝나고 잠시 편안한 차림으로 바꿔 입으려 이동하던 그가 “3분만요~”라며 양해를 구했다. 초특급 매너에 어찌 감동하지 않겠느냐. 채 감동이 가시기 전에 그가 또 한 번 나의 가슴을 강타했다.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고, 단도직입적으로 첫 질문부터 던졌다. “요즘 여기자들이 아주 난립니다. 까칠하시기로 소문난 분이 요즘 ‘매너 짱’에 ‘위트 남’이라고 말들이 많아요. 영화의 영향인가요?”
그가 여유 있게 답했다. “에이, 언제는 무서울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편하다더니…다들 거짓말이었어. 요런 변덕쟁이들!”
또 다시 인터뷰 현장에 웃음꽃이 피었다. 침묵이 흐르거나 어색한 걸 싫어한다는 그다운 위트였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그는 ‘류승룡인지 장성기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렸다. 상대의 눈을 맞추고 이야기하고 호응도 적극적이었다. 질문 사이에 약간의 공백이 생기면 위트 있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업 시켰고 사적인 질문에도 굉장히 솔직하게 답변했다.
이날 인터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화는 단연 아내 이야기였다. “영화 속에서 여자의 마음을, 정확히 말해 남의 아내(임수정)을 너무 잘 아는 장성기를 연기했다, 실제 아내에 대해서는 얼마나 안다고 자신하세요?”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술술 풀어놓은 너무나 가슴 따뜻해지는 답변들. 누구든 그의 이 말을 들었다면 결코 ‘까칠’ ‘냉정’ 같은 편견들을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실제 모든 사람이 비현실적인 성기와 소심한 이두현(이선균, 첫 눈에 반한 아내지만 매일 심통만 부리는 아내에게 권태를 느껴 천하의 바람둥이 성기에게 아내를 유혹해달라고 부탁함)의 양면성을 모두 지니고 있는 것 같아요. 부족하지만 잘 하고 싶고,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도 않고… 하지만 적어도 아내가 내 운명이란 건 확실해요. 내가 배우 류승룡으로 이름을 알리기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 류승룡으로 나를 사랑해 준 사람이죠. 자살을 선택할 만큼 힘들었던 성기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정인(임수정)을 운명적으로 사랑하게 됐 듯이 내 생의 가장 큰 운명은 우리 아내에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기자 kiki2022@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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