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석권 씨는 필리핀에서 온 아내와 국제결혼을 해 쌍둥이 형민(12) 혜림(12) 남매를 낳았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2년 전 감기인줄 알고 찾았던 병원에서 아내는 후두암 판정을 받고 손 쓸 겨를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아내의 병수발을 하느라 살던 집의 보증금까지 날려버린 석권 씨가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할 수 있는 일은 택배였다. 집안일에서 배달일까지,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석권 씨의 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석권 씨의 희망인 형민이와 혜림이는 1분 차이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다. 엄마 아빠가 일을 하는 바람에 필리핀 외가댁 할머니 손에서 자란 남매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말이 통하지 않아 학교 적응에 애를 먹었다. 남매는 이제 구수한 부산 사투리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정도로 한국말이 늘어 아빠를 기쁘게 한다.
동생 혜림이는 오빠 형민이보다 먼저 철이 들었다. 매일 아침 아빠와 형민이를 깨우고, 밤에 밥을 못 챙겨 먹는 아빠를 걱정해 식사를 챙기기도 한다.
하지만 혜림이는 학교를 벗어나기만 하면 불안함에 아빠를 찾느라 전화기를 놓지 못한다. 아직 아빠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 딸을 보며 석권 씨의 가슴은 무너진다.
세 가족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석권 씨가 운전하는 택배차를 타고 이야기꽃을 피울 때다. 형민이와 혜림이는 쏟아지는 잠에 꾸벅꾸벅 졸면서도 아빠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즐겁기만 하다. 남매는 문자가 서툰 아빠를 대신해 고객에게 문자를 보내고, 어둠을 헤치며 함께 배달을 가기도 한다.
택배차는 세 식구의 밥줄이자 보금자리이지만 석권 씨 친구가 쓰던 중고차를 얻은 탓에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네비게이션도 고장나 꺼지기 일쑤다. 엎친 데 덮쳐 요즘은 자꾸 시동이 꺼지며 도로 위에 차가 멈춰 선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석권 씨는 만만치 않은 수리비에 차를 고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전에 살던 집에서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 난 석권 씨 세 식구는 친구집서 얹혀살고 있다. 이마저도 사정이 어려워진 친구가 집을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남매는 방 두 칸짜리 집으로 이사해 제방을 얻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두 아이가 하루빨리 편안한 꿈을 꾸기 바라며 석권 씨는 오늘도 희망을 배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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