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라고 말하면 알아듣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라는 호랑이의 대사는 너무도 익숙한 우리의 옛이야기다.
고개를 넘는 떡장수 어머니를 잡아먹은 호랑이는 오누이의 목숨까지 노려 집으로 찾아온다. 하지만 치마 아래 삐져나온 호랑이의 꼬리를 보고 정체를 알아챈 오누이는 몰래 도망쳐 나무위로 올라가고 해와 달이 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 아무도 모르는 아주 중요한 장면이 빠져있다. 호랑이와 함께 방에 있던 오누이는 어떻게 도망쳐 나왔을까.
‘한국구전설화’에는 1920년대부터 전국을 돌며 옛이야기를 탐구한 채록가들의 채록본이 담겨있다. 이를 살펴보면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속 오누이는 호랑이와 함께 있던 방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기가 막힌 꾀를 낸다. 바로 “똥이 마렵다”는 핑계를 댄 것.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뿐 아니라 다른 전래동화 속에서도 사라져 버린 장면들이 많다. 팥쥐 모녀에게 갖은 구박을 당하던 콩쥐가 결국 원님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산다는 한국판 신데렐라 ‘콩쥐팥쥐’의 진짜 결말은 콩쥐가 결혼 후 팥쥐 모녀의 계략으로 죽음에 이르지만 다시 환생해 팥쥐 모녀에게 복수를 한다는 것이다. 의외로 섬뜩하다.
‘흥부와 놀부’는 어떨까. 우리가 알고 있던 건 욕심 많은 놀부를 혼내주기 위해 박속에서 도깨비가 나와 그를 벌하는 것이지만, ‘흥부와 놀부’ 이야기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판소리 ‘흥부가’에서는 흥부를 혼내주는 인물이 도깨비가 아니라 중국의 장수 ‘장비’다.
‘선녀와 나무꾼’의 결말 또한 다양하다. 그동안 보편적으로 알려진 ‘선녀와 나무꾼’은 하늘로 떠나버린 선녀를 그리워하던 나무꾼이 하늘로 올라가 선녀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지상의 홀어머니가 걱정돼 내려온 나무꾼이 사고로 다시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다는 비극적 결말이 존재한다.
이렇듯 전래동화의 사라진 장면에는 옛사람들의 해학과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등이 담겨있다. 나아가 우리 민족 특유의 인생관과 우주관을 읽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옛이야기 속 사라진 장면들은 과연 누가 삭제한 것이며 변질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동화의 역사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래동화집은 1924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동화집’이다. 일본인 학자가 우리나라의 옛이야기를 정리하다 보니 우리 이야기의 예술성이나 서사성 등 가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 후 일본인 학자가 정리한 옛이야기들이 교과서와 책으로 무분별하게 전해지면서 변형된 옛이야기가 우리의 옛이야기인 것처럼 자리 잡았다. 작가나 학자들이 우리 옛이야기의 원형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단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일본 만화, 유럽 동화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에게 전래동화는 단순한 재미 이상의 소중한 교훈이 된
‘뿌리 없는 나무는 바람에 견딜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넘쳐나는 이야기 속 우리 옛이야기의 원형을 이해하고 제대로 전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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