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민은 케이블채널 OCN에서 방송 중인 국내 최초 한국형 히어로 드라마 ‘히어로’에서 졸부의 아들이지만 본의 아니게 왕따를 당한 신동민으로 출연 중이다.
극중 동민은 어려서부터 컴퓨터에 몰두한 상당한 실력을 지닌 해커로 유일한 친구 흑철(양동근 분)의 히어로 활동을 돕는다. 어수룩한 외모지만 방정맞은 이미지가 강하다. 전작에서 권민이 보여준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캐릭터다.
최근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 만난 권민은 “사회적으로 불의를 보고도 참거나 관여하고 싶어하지 않는 풍토가 만연해 있지 않나. 연기 하면서 화 내거나 지르는 씬에서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히어로’는 부정부패로 찌든 정치 게이트를 소탕하는 스토리가 전개돼 시청자에게 통쾌함을 주고 있다. 권민은 “남자들은 누구나 그런 로망이 있는 것 같다. 슈퍼맨 혹은 배트맨 같은 영웅이 돼 세상을 구하고 싶은. 내가 히어로 역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이같은 소재의 작품을 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며 눈을 반짝였다.
‘히어로’ 흑철 역의 양동근과는 실제로 동갑내기. 권민은 “이젠 눈인사만으로도 알 것 같은 느낌이다”며 “동근이가 현장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히어로’로 만난 양동근은 권민에게 친구이자 연기에 대한 생각을 바꿔준 자극제가 되기도 했다. “동근이의 액션을 보면서 그동안 나는 전형적인 틀 안에서 대본을 봐왔던 게 아닌가 싶더라. 대본만 보면 평범하게 넘어갈 수도 있는 장면에서 생각지도 못한 디테일을 구사하더라.”
냉정하게 주인공의 친구, 조연 역할의 비중은 해당 연기자가 어떻게, 얼마나 잘 소화했느냐에 따라 캐릭터 비중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사실. 권민은 흑철의 친구이자 조력자 그 이상의 캐릭터로 승화시키기 위해 사투리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 역시 만만치 않은 미션이었다.
“원래 부산이 고향인데 15년 정도 사투리를 안 써서 그런지 친척이나 고향 지인들은 (사투리가) 어색하다고 하시더라. 요즘은 사투리를 그렇게 세게 안 한다고(웃음). 촬영 기간 동안엔 친구들과 통화할 때도 사투리로 대화하며 연습하곤 했다.”
권민이 기존 맡아왔던 캐릭터를 떠올리면 ‘히어로’ 속 동민은 180도 이미지 변신이기도 하다. 권민은 “안경 쓰고 나온 캐릭터 자체가 처음이었다. 그간 너무 반듯하고 정적인 연기만 해왔는데, 스펙트럼을 넓힐 기회가 생겼다는 게 너무 감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손병호, 최철호, 박원상, 조재윤 등 내로라하는 연기파들이 대거 포진한 ‘히어로’ 현장은 권민에게 전쟁터와도 같았다. 모두가 권민에게는 선배이자 현장 스승님. 권민은 “첫 대본 리딩부터 카리스마와 포스에 놀랐다. 다들 베테랑이신데도 엄청난 준비를 해오시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히어로’를 하면서, 전쟁 같았다는 게 그런 느낌이었다. 처음 대본 리딩에 참여했을 때, 딴에는 노력한다고 했는데 오히려 신인인 내가 선배들보다도 준비를 덜 해 갔던 거다. 정말 안이하게 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요즘 많이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히어로’를 통해 권민이 얻은 것은 또 있다. 젊은 날 패기와 열정이 앞선 탓에 부렸던 ‘욕심’을 내려놓는 방법을 배우게 됐다고.
“예전엔 더 잘 나와야지, 멋있어 보여야지 하는 욕심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접근이었다. 이번 ‘히어로’ 같은 경우 극 속에서 튀어야겠다는 생각을 배제하고 임했다. (양)동근이 톤 자체가 개성이 강한 만큼, 동근이 톤에 맞추기로 했다. 톱니바퀴 굴러가듯. 그런 마음으로 하니 오히려 보는 사람들도 더 편해보인다 하더라.”
4년 전. 케이블채널 OCN 드라마 ‘경성기방 영화관’에서 주인공으로 분해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지만 이후 출연한 ‘종합병원2’(2009), ‘동이’(2010)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쓴 약이 됐다.
“주인공 아닌 조연이다 보니 많은 인물들 중 어떻게 하면 눈에 띌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촌스러운 생각인데(웃음), 상대 배우의 기에 뒤지면 안 되겠단 생각을 했었다. 욕심을 과했던 거다.” 그는 “이제는 캐릭터만이 아닌, 작품 속 인물을 먼저 보게 된다”며 싱긋 웃었다.
양약고구(良藥苦口)라 했던가. 그는 욕심을 버린 대신, 진짜를 얻었다.
미술학도를 꿈꿨던 권민은 홍대 앞에서 길거리 캐스팅으로 발탁돼 연예계에 발을 내딛었다. 훈남 이미지 덕분에 다양한 CF에서 활약한 그는 2004년 영화 ‘썸’으로 연기자로 데뷔, 20대의 상당한 시간을 현장에서 보냈다. 그런 권민에게도 슬럼프는 물론, 있었다.
“내가 잘 하고 있나. 심각하게 그런 고민이 왔을 때가 서른 한두 살 때 쯤이었다. 아무래도 남자 나이 서른둘 정도 되면 동창들은 결혼해서 가장이 되고 안정을 찾아가지 않나. 반면 나는 아직 터지지 못했으니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 불안의 연속, 접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하지만 권민은 크던 작던 꾸준히 카메라 앞에 설 기회를 잡았다. “고민의 기간이 일 년 이상 됐다면 아마도 다른 일을 찾지 않았을까. 하지만 의기소침해졌다가도 계속 작품을 하게 되고, 피폐해져 있었다면 나만 망가지는 것 아닌가.” 이제 그는 더 이상 연기자의 길을 고민하지 않는다.
권민은 특별히 롤모델을 꼽진 않았다. 다만 전미선, 김서형처럼 오랜 내공이 뒤늦게 빛 발하는 명품 연기자가 되고픈 꿈은 가감 없이 드러냈다.
“요즘 시선이 많이 가는 배우는 김태우 선배님이다. 또래를 대표하는 배우들보다도 부담 없이 편안하게 연기하는 선배들을 닮고 싶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시청자들게 권민이라는 배우를 알리고 싶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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