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시장으로 개설된 광장시장은 초기부터 한복, 혼수품이 주된 판매 물목이었고 여전히 전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한복주단시장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미로처럼 복잡한 통로에 자칫하면 길을 잃고 마는 2층 도소매가게에서는 주단을 팔고, 3-4층에 있는 바느질방에서는 숙식을 해결하며 한복을 만들고 있다.
이곳 사람들의 경력은 보통 3,40년이다. 이들은 우리나라 한복 기술자들의 고향이라 불리는 곳에서 전통을 이어간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가업을 잇는 아들 김성만(53세)씨의 기억 속 어머니는 늘 ‘슈퍼맘’이었다. 새벽부터 시장에 나와 장사하고 하나뿐인 아들이 아프면 장사하다 말고 뛰어와 업어줄 만큼 모든 일에 열심이던 어머니다. 아들은 아직까지 건강하게 옆자리를 지켜주는 어머니께 감사하고 있다.
손님 중에 재일동포 김정자(56세)씨는 아들의 결혼소식을 듣고 오사카에서 날아왔다. 아들 결혼식 때 입을 자신의 한복뿐 아니라 딸의 한복도 맞추기 위해서다. 일본에서 살다보니 ‘민족심’이 필요했다는 김씨는 비행기 값을 치르더라도 광장시장에 와서 맞추는 것이 비용이 저렴하고 디자인도 예쁘다며 미소 짓는다. 김씨와 그의 딸 그리고 많은 재일동포들이 대를 이어 우리의 전통을 찾아 바다를 건너오고 있다.
천생연분 부부는 16년 전 큰일을 겪었다. 남편 유제기(63세)씨가 뇌수막염으로 쓰러진 후 기억을 잃어 집에 가는 길을 잊을 만큼 상태가 심각해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요양원에 가야 한다고 했지만 재봉틀 수리하는 일을 천직이라 생각하던 남편은 출근을 고집했다.
이후 아내 송선덕(60세)씨가 남편을 돕기 위해 가게에 나왔고 부부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이웃들은 그녀에게 한복 만드는 기술을 가르쳤다. 그때부터 남편 옆에서 일을 시작한 아내는 놓쳐버린 남편의 기억 위에 새로운 삶을 수놓기 시작했다.
이제는 가족 5명의 얼굴 밖에 기억하지
오늘도 광장시장 구불구불 미로 같은 통로에는 누군가의 설렘이 찾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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