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람이 차가운 새벽3시 삼천포항은 경매준비로 분주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삼천포항은 사계절 중에서도 벚꽃 필 무렵을 수산물이 가장 맛있는 철로 꼽는다. 도다리, 키조개, 털게 등 4월의 삼천포항은 수산물 천국이다.
경매가 시작되면 값을 높이려는 어업인과 조금이라도 싼 값에 좋은 물건을 사려는 중도매인들과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진다.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있을 새벽이지만 삼천포항은 치열한 삶의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삼천포에서 제일 먼저 봄소식을 알리는 건 도다리다. 4월에 가장 맛이 좋다는 자연산 도다리를 맛보러 전국의 식도락가들이 몰려온다. 제철 맞은 생선들 덕분에 삼천포항 수산시장은 오랜만에 봄의 활기를 띤다.
아지매들 사이에 눈에 띄는 젊은이가 카메라에 포착됐다. 능숙한 칼 솜씨를 뽐내는 문선주(35) 씨는 14년 째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도 남들처럼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려했지만 어머니의 권유로 횟집 일을 시작했다. 앞치마 두르는 일이 부끄러워 처음에는 후회도 많이 했었다.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 같은 분들과 함께 부대끼는 시장생활은 이제 문 씨에게 가장 즐거운 일이 됐다. 하얀 속살 드러낸 생선을 보면 뿌듯함에 입꼬리가 올라가고, 회 뜨는 손놀림에 놀라는 손님들을 보면 짜릿함을 느끼는 문 씨는 동상, 땀띠로 온 몸에 훈장을 새기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배 사업을 하던 중 배가 침몰하는 사고로 전재산을 잃었다는 강기순(66) 할머니는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준 것 또한 바다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시장에서 가오리 할머니로 불리는 박도순(67) 할머니는 어릴 때 천연두를 크게 앓았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아픈 기억이 남아있는 얼굴 때문에 학교도 나가지 않고 홀로 지냈지만 할머니가 세상에
생명력이 꿈틀대는 삼천포항은 이들에게 정년퇴직 없는 평생직장이다. 많은 것을 주면서도 우쭐대지 않는 바다의 넉넉함을 아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삶의 시작이며 끝이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