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한창이던 2011년 마지막 날, 인적 드문 고갯길을 지나던 등산객 A씨는 가파른 계곡 밑에 찌그러진 승용차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출동한 경찰은 차적을 조회했고, 차의 주인은 이규진(가명)씨로 밝혀졌다.
이 씨는 열 달 전 동반자살을 암시한 유서를 남기고 가족과 함께 가출한 상태였다. 표면적으로는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가족의 동반 자살 현장이었다.
현장을 살펴보던 형사들은 사건이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가족이 동반자살을 했다면 4구의 시신이 나와야 하는데 발견된 것은 2구의 유골뿐이었다. 심지어 그 유골은 부모가 아니라 당시 13살, 10살이던 이 씨의 두 딸인 것이었다.
부모의 흔적이 없는 사건 현장은 여러모로 의문점을 띠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는 “차가 주행 중 낭떠러지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절벽 가까운 곳에서부터 저속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발견된 차량이 여기저기 긁힌 것으로 봤을 때 위에서 천천히 굴러 떨어졌고, 그 과정에서 유골의 위치로 아이들이 튕겨져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었다. 그렇게 사건은 정리되는 듯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부부의 또 다른 유서가 발견되면서 사건은 새 국면을 맞았다. ‘우리가 아직 살아있네요’라는 말로 시작하는 유서에는 부부가 근처 호수에서 죽을 거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부부는 죽지 않았다. 유서를 쓴 2주 뒤, 이들은 경기도 의정부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 결과 두 사람은 모두 동상 치료를 받았고, 그 후 전국을 돌아다니며 도피 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면 부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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