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검이자 차궐남(차가운 궁궐 남자) 운은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다지만 그 안에는 수십 가지의 감정이 혼재해있었다. 그리고 그런 운을 연기한 배우 송재림(27)의 얼굴에는 온라인상에서 화제를 모은 스무가지 표정모음보다 더 많은 표정이 담겨있었다.
’해품달’과 함께 한 4개월 여의 여정을 뒤로 하고 마지막 방송을 기다리던 송재림을 만났다. 조각상 같은 얼굴을 한 그였지만 왠지 다양한 얼굴근육을 쓸 줄 아는 사람인 것만 같아 망설임 없이 ’무표정’ 관련 언급부터 시작했다. 오히려 격한 감정 표출보다도 표정 변화 없이 다양한 감정을 연기하는 게 힘들지 않더냐고.
"힘들었어요. 아무리 지문에 표정이 없다고 돼 있어도 무표정만 하고 있으면 그 또한 아니될 일이니까요. 얼굴 근육을 조금씩이라도 사용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고, 순간순간의 감정에 많이 맡겼죠."
그럼에도 송재림에게는 캐릭터적으로나 이미지로나 무표정이 썩 잘 어울렸다. "아무래도 차가워보이는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요? 어렸을 땐 외꺼풀 눈매가 콤플렉스였어요. 소지섭 형님의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후 외꺼풀이 인기를 모으기 시작한 듯 한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요.(웃음) 눈의 깊이를 갈고 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원작과 달라진 스토리 전개가 다소 아쉬울 법도 한데, 송재림은 러브라인 실종에 대한 아쉬움보단 "분명히 훤과 양명을 사랑했다"고 선을 그었다. 월에 대해서는 "기억상실에 걸린 불쌍한 친구"라며 "측은지심을 갖기도 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성인 연기자들의 첫 촬영은 훤과 양명 그리고 운이 한 자리에 벗으로서 둘러앉은 장면이었다. "어명이다" 한 마디에 술을 멀리하던 운이 ’원샷’을 한 깨알같은 재미를 준 에피소드. 하지만 "처음이라 너무 절도있게 했었다"며 재촬영을 했다고 털어놨다.
"처음엔 무사라는 함정에 너무 빠져 있던 거죠. 하지만 셋만 모인 관계에서는 단순히 주종관계가 아닌, 벗으로서의 느낌도 필요했던 거였기 때문에 재촬영 할 땐 은은한 미소를 머금기도 했죠." 이날의 첫 촬영부터 마지막이 된 쓸쓸한 촬영 장면까지. 송재림에게는 매 순간이 스스로에 대한 도전이자 시험이었다.
본격적인 배역을 따낸 것으로 치면 첫 번째 작품인 ’해품달’은 송재림에게는 그 자체로 학습의 기회이기도 했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난 행복한 추억이기도 했다. 특히 강녕전 3인방 김수현, 정은표는 송재림에게 안팎으로 큰 힘이 된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선배들이다.
"(김)수현이는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예요. 상대를 즐겁게 해주면서도 호흡을 끊지 않을 정도로 적정선을 유지하고, 본인이 할 것도 알아서 잘 하고. 정은표 선생님은 감독님보다 나이가 많으시기 때문에 왠지 든든한 바리케이트 같은 존재였달까요 하하." 셋이 함께 하는 마지막 촬영이 끝났을 땐 결국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단다.
"모델 일을 했던 송재림이 연기한다는 사실을 각인시킬 수 있었던 건 ’해품달’이죠. 굉장한 행운이고, 어쩌면 이런 기회가 또 올 수 있을까요? 높은 시청률 덕을 제가 많이 본 것 같아요. 감동을 드린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이런 기분을 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어느 정도의 부담감으로 갖고 있을 생각입니다. 평생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사랑을 받았는데,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안되잖아요."
모델로 먼저 데뷔, 주목받은 뒤 2009년 메이다니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며 연기의 맛을 처음 알게 된 송재림은 "모델과 연기를 분리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연기자의 꿈을 처음 품은 건 언제였을까.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조금은 희미해졌다는 출발점인데, 오히려 추상적이기에 더 설득력이 있다.
"아마도 저 자신에 대한 도전이었을 거예요."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는 송재림은 사춘기를 보내는 동안 스스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자문은 궁극에 그를 연기자의 길로 이끌었다. 대학을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연기를, 그리고 세상을 배워 나갔다.
"밤샘 촬영을 비롯해 모든 시간을 함께 하면서 스태프들의 고생과 노고를 함께 봐왔는데, 그들과 함께 ’해품달’이라는 추억을 공유했다는 점이 즐거웠습니다. 다른 작품을 통해 또 그런 추억을 만들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한 시간을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따뜻해지고, 이런 경험이 많아지면서 제 일에 대한 의식이 생기고 제가 하는 일을 더 사랑하게 될 것 같아요."
배우로서의 각오 또한 당찬 신인다웠다. "연기 잘 하는 사람들을 보면 욕심나요. 계속 눈에 많이 담으려고 하죠. 제 대표작을 만들고, 좋은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은 게 최종 목표입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팽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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