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비’가 고종에 집중하려 했다면 초반부터 고종을 중요하게 강조해야 했을 거다. 하지만 영화는 고종보다 아비를 잃고 러시아에서 전전긍긍한 여인 따냐(김소연)을 집중했고, 그가 왜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가 돼야 했는지에 집중한다.
러시아어에 능통하고 한 번 본 모든 것을 기억하는 따냐는 연인 일리치(주진모)와 함께 러시아에서 커피와 금괴를 훔치며 살아간다. 잘 도망치던 이들은 결국 러시아군에 붙잡히고 처형의 위기에 처해진다. 하지만 조선계 일본인 사다코(유선)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한다. 기쁨도 잠시, 사다코는 고종의 암살이라는 음모에 이들을 이용 하려한다. 따냐는 바리스타로, 일리치는 사카모토라는 이름의 첩자로 고종에게 접근한다.
커피에 독을 타 고종을 살해해야 하지만 따냐는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고종에게 연민을 느끼고 마음이 흔들린다. 일리치는 모든 것을 떠나 따냐를 지키고 싶은 마음뿐이다.
초반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떠나 러시아에서 삶을 연명해 온 따냐와 일리치의 멜로와 액션에 집중했다. 깊은 멜로는 아니지만 일리치가 따냐를 생각하는 마음은 짙다. 두 사람이 러시아 공사관에 들어간 중반부터 스파이 스릴러물로 변모된 영화는 흥미진진해진다. 여기에 고종의 고뇌가 더해지고, 따냐와 일리치, 고종의 3각 관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재미들이 극을 풍부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주목할 인물은 따냐를 연기한 김소연이다. 영화 ‘체인지’ 이후 15년 만에 돌아온 그는 모든 걸 쏟아냈다. 보헤미안 느낌으로 초반을, 잘록한 허리와 엉덩이 라인이 강조된 하이웨스트 스커트로 중반을, 전통 궁녀복으로 후반을 소화하며 3색의 전혀 다른 매력을 드러낸다. 또 아버지를 죽게 만든 고종을 향해 증오하는 마음에서 연민과 존경으로 변하는 감정 연기는 탁월하다. 과하지 않는 절제의 미가 제대로 실렸다.
박희순의 고종 연기 역시 일품이다. “나는 가비의 쓴맛이 좋다. 왕이 되고부터 무엇을 먹어도 쓴맛이 났다. 헌데 가비의 쓴맛은 오히려 달게만 느껴지는구나”라고 털어놓는 그에게서 왕후를 잃은 슬픔과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온전히 전해진다. 슬픔과 설움, 분노 등 즐거움을 제외한 모든 감정을 과잉 없이 몰입했다. 연인을 지켜주고자 하는 주진모의 ‘순정 마초’ 이미지와 첫 악역에 도전한 유선의 캐릭터도 볼거리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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