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장면을 캐치한 순간 포착력에도 관심이 간다. 각 인물의 살아있는 표정과 영화 촬영 현장의 분위기를 잡아내는 직업. 스틸작가 조원진(39) 스튜디오박스 실장이 하는 일이다. 낯선 직업이지만 영화 촬영 내내 감독 및 스태프, 배우들과 동행한다.
최민식과 하정우가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을 펼치고 감독의 컷 사인이 났을 때, ‘1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조 실장이다. 현장에서 스틸작가는 ‘갑’이 아니지만 이 영화의 표현을 빌면 “살아있네~!”라고 할 수 있는 사진을 얻기 위해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 조 실장은 “솔직히 우리가 메인은 아니니까 쉬는 시간에 배우들에게 정중히 부탁을 하며 1초의 중요성을 설명한다”며 “연기를 1초 더 해주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라고 웃었다.
더 쉽게 설명하자면 영화 촬영 현장 공개 사진이나 영화 포스터가 공개됐다는 언론보도용 자료들에 쓰이는 사진들이 스틸작가인 조 실장의 ‘작품’들이다.
햇수로 9년차인 조 실장은 이제는 배우들이 ‘1초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그런대로 촬영이 수월하다고 했다. 언제, 어떤 아름다운 장면이 나올지 모르니 ‘매의 눈’으로 현장을 지켜보며 촬영 본능을 발휘해야 하지만 말이다.
“제가 찍은 기록들이 인쇄돼 다른 사람들이 보고 그 현장이 남겨지는 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모두 담아내는 건 저 밖에 없잖아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그 환상적인 공간과 시간 안에서 현장을 기록하는 게 감사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웃음)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처음 김기덕 감독의 ‘시간’ 촬영 현장에서 만났을 때였죠. 당시 김 감독님의 조연출이었던 장훈 감독과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정우씨가 연기를 잘하는 것을 알겠다고 했어요. 김기덕 감독님 영화는 현장 편집 없이 배우들이 모든 것을 머리에 두고, 감정까지 잡아 연기하거든요. 장훈 감독이 나중에 편집을 하는데 연기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에 놀랍다고 했어요. 저도 그렇게 느꼈죠.”
이 세계에 있는 동안 꼭 작업하고 싶었던 배우로 최민식을 꼽은 그는 원을 풀었다고 했다. 누구나 인정하는 대한민국 대표 배우인 최민식의 열혈 팬임을 자처한 그는 최민식의 작품을 거의 다 봤다. 다만 리허설이 많이 없었던 것을 아쉬워했다.
“최민식 선배가 연기할 때는 연습이 거의 없거든요. 각 컷마다 표정과 연기가 지나가고 있는데 셔터를 못 누르니 그 순간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그래도 잡아낸 표정을 보면 와~ 근육들이 살아 움직이며 나오는 표정이 예술이죠. 조각 외모에서 나올 수 없는 아우라가 있거든요.”(웃음)
‘비몽’에서 함께 한 오다기리 조에게는 “어떤 컷이든 모든 게 다 멋졌다”고 기억했고, 내년 개봉 예정인 영화 ‘회사원’에서 소지섭과 함께 한 소감은 “그냥 그대로 ‘간지’다. 그런 사람을 찍는 건 사진가에게 축복”이라고 좋아했다.
다른 스태프와 달리 배급사 및 홍보마케팅사와 계약을 하는 스틸 작가. 현재는 촬영 카메라의 성능이 워낙 좋아져서 스틸작가가 있어도, 없어도 그만일 수도 있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감독이 연출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장면과 다른 관점으로 중요한 컷을 찍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각도의 영상이 전달되는 게 달라지는 건 당연하다.
소박하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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