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파 작곡가 슈만의 아내이자 브람스가 흠모했던 클라라 슈만, 앤디워홀의 에디 세즈윅 같은 ‘뮤즈’가 필요하단다. 소설가 구주월(하정우)은 글쓰기에 필요한 창작 능력을 끌어내기 위해 사랑을 갈망한다.
그래, 예술가들 곁에는 항상 창작욕을 마르지 않게 하는 존재들이 있었다. 주월 자신은 물론 그를 연애하도록 부추기는 주변의 생각이 불순한 의도인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이 인간 참 꼬였다. 그래도 인간사는 일희일비다. 사랑에 상처를 받았으면 그 상처를 치료하는 것도 사랑이다. 베를린 영화제에 들렀다가 우연히 만난 영화사 직원 희진(공효진)을 만나 첫 눈에 ‘뿅’ 간다.
너무 예쁜지 눈을 못 떼고, 사극에서나 나올법한 문체를 편지로 보내 마음을 고백한다. 그의 유머러스한 고백은 성공하고, 연애는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 같다. 둘은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된다. 자연스레 동침을 하려는데 주월은 한 번도 깎지 않았다는 희진의 거뭇한 겨드랑이 털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사랑스러워 할 수 있다며 아주 ‘포옥’ 빠지셨다.
희진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창작 욕구를 불태우며 쓰기 시작한 신문 연재소설 ‘액모부인’은 엄청난 반응을 얻는다. 그런데, 희진의 과거가 전해진다. 다시 비극이다. 사진 찍기 좋아하던 희진은 남성을 집에 초대해 밤을 지새우며 사진을 찍던 자유분방한 여자였다.
시간이 지나면 남자의 사랑이 변해서일까. 주월은 희진의 과거를 알고 꽁생원이 됐다. 쿨한 척, 모른 척, 아닌 척 하다가 결국 폭발한다. 그는 자신이 31번째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렇게 둘은 멀어진다.
감독은 또 ‘액모부인’을 액자식으로 구성해 웃음과 함께, 주월의 내면을 넌지시 드러낸다. 살인사건에 연루됐지만 그 여성을 사랑하게 된 형사의 이야기에서 형사는 그 여성을 끝까지 지켜주려 하기 때문이다. 주월이 가상인물인 M(이병준)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지 전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영화는 하정우와 공효진이라는 두 배우가 만나 보여주는 강점이 엄청나다. 징글하고, 능글하며, 코믹한 모습까지 이리도 잘 보여줄 수 있을까. 강한 이미지로 인식된 하정우는 코믹 연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털털한 모습을 주로 보인 공효진은 예쁜 인물로 변했다.(물론, 겨드랑이 털도 보는 이에 따라 예쁘기도 한다) 굳이 두 사람의 연기를 평하지 않아도 된다. 둘이 모였다는 것만으로 정말 게임 끝이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한국판 남성판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조금은 더 쉬울 것 같다. “로맨틱코미디를 다시는 만들 생각이 없다”는 감독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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