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은 라디오PD지만 뮤지션으로서의 자부심은 누구 못지 않은 프로급 싱어송라이터 곰PD. 지난 달 공개한 두 번째 디지털 싱글 ’스치다’는 1집보다 더 잔잔하고 은근하게 음악 마니아들의 감수성을 파고들었다.
파릇했던 1집, 달콤했던 사랑의 감성은 계절의 변화를 타고 쌉싸름한 기억의 이미지로 변모했다. 앨범 타이틀만큼이나 담담한 감성이 귀를 간질인다.
디지털 싱글로 제작해 단 세 곡만 수록한 앨범. 차지도, 넘치지도 않고 그저 담백하다. 곰PD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어쩌다 보니" 모두 슬픈 이별 노래라며 미소를 보였다.
헤어진 뒤에야 진짜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 아쉬움을 담은 곡 ’하고싶은 말’은 최근 프로젝트그룹 신치림으로 활동 중인 기타리스트 조정치가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불렀다. 곰PD 버전과는 또 다른, 쓸쓸한 곡의 분위기에 걸맞는 보이스로. "기타를 부탁하려고 얘기했는데 (조)정치형이 기타 치며 노래를 읊조리는 걸 보니 ’저 사람이구나’ 싶더라고요."
’물고기자리’와 ’기억이 시간보다 느려서’는 곰PD가 직접 불렀다. "물고기자리는 2~3월에 걸쳐있는 별자리인데, 짧게 스친 사랑을 별자리에 비유해 담아봤어요. 마음은 사랑하지만 머리는 안 된다고 해서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 시각, ’물고기자리’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겐 이처럼 공감 가는 노래보다 더한 위로가 어디 있으랴 싶다.
’기억이 시간보다 느려서’는 이별 후 일상에서 겪는, 보내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아쉬움을 담았다. 곧 품절남이 될 곰PD는 "슬픈 발라드 감성은 이번 앨범이 당분간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작업 과정은 수월하지 않았다. KBS 2FM ’이현우의 음악앨범’에서 현재 맡고 있는 ’최강희의 야간비행’으로 자리를 옮기는 와중, 새로운 프로그램을 런칭시켜 자리잡아가는 과정이라 바쁜 시간을 쪼개야 했다. "곡은 편하게 나왔는데 가사 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그이지만 "감성이 살아있었던" 덕분에 또 하나의 곰PD표 발라드가 완성됐다.
지난 가을엔 그랜드민트페스티벌(GMF) 무대에 서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넓게 트인 야외 무대에서의 공연 경험은 본의 아닌 스튜디오 은둔형(?) 곰PD에게 신선한 자극이었다.
"친구들과 합주 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투잡이다보니) 공연을 많이 할 수 없는 여건인데, 아무래도 스튜디오 안에서의 연주에 익숙했던 거죠. 앞으로도 많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됐어요." 그는 3월 초 예정된 공연을 통해 "스튜디오형 뮤지션을 벗어나 라이브형 뮤지션으로 거듭나고 싶다"는 각오를 다졌다.
함께 작업해 보고 싶은 뮤지션을 꼽아달라 하자 잠시 뜸 들이나 싶더니 이내 다이나믹듀오, 정인, 엠디에스(MDS), 글렌 체크 등 뮤지션들의 이름이 술술 나온다. 다음 작업은 이전과는 달리 일렉트로닉 장르를 깊게 파보고 싶단다.
잡식성 ’곰’을 닮은 곰PD. 부지런한 습성도, 호기심조차 닮은 듯 하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음악 공부는 눈과 귀로 함께 한다.
"음악인으로서도, 라디오PD로서도 칭찬받고 싶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회사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시점이에요. 프로그램을 런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신 없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도도 계속 해보고, 소리에 대한 탐구도 꾸준히 하고 있죠."
늦가을부터 청취자들을 만나온 ’최강희의 야간비행’은 겨울을 지나는 현재, 독보적인 선곡으로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곰PD는 "기존 ’라천’민들이 열광했던 코드와는 다르지만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자신 있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좋은 음악을 알린다는 소명의식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DJ 최강희는 ’야간비행’ 노트를 따로 갖고다닐 정도로 음악 공부에 열심이라고. 곰PD는 "편하게 음악을 공유하는 친구같은 느낌을 주는 최강희 DJ의 목소리가 새벽시간대의 감성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음악과 함께 하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 물어본 곰PD의 꿈은 소박했다. 라디오PD로서는 프로그램으로 인정받고, 뮤지션으로서는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자 했다. 단지 내가 좋아서 하는 음악이 아닌, 농익은 그리고 깊이있는 음악을 하겠다는 꿈을 뚜렷이 드러냈다. 여기에 조금 욕심을 덧붙이자면 함께 하는 동료 뮤지션들과 함께 커가는 음악인이고자 했다.
"이젠 더 이상 인디음악을 구분 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좋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집단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위기에 작은 바퀴 하나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 즐겁게 음악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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