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내놓은 1집 ’티미르호’가 창해를 향한 출발의 신호였다면, 2집 ’동화(動話)’는 무한대의 창공을 향해 날아오르는 배의 이야기를 웅장한 스케일과 과감한 시도로 그려냈다.
굳이 장르화하자면 네오 클래식 장르의 어쿠스틱 앙상블이라 소개하면 무난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티미르호는 소규모 앙상블의 한계를 뒤어넘는 표현력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피아노 및 작곡을 담당한 선장 김재훈은 여전히 중심에 있지만, 1집과 악기 구성이 달라진만큼 앙상블 멤버는 클라리넷 주자 김주민과 첼로 주자 이창현으로 변화를 꾀했다.
"관악과 과사무실에 선의의 거짓말을 보탠 문의를 했어요. 티미르호 작업이라는 소개 대신, 대작 영화 OST 제작에 참여할 클라리넷 주자를 문의해서 지금의 멤버를 만나게 된 거죠. 첼리스트는 클라리넷 주자의 추천으로 함께 하게 됐고요."(김재훈)
인터뷰에 동석한 김주민은 "조교 형 덕분에 참여하게 됐다"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단지 의기투합 만으로 성사될 수는 없는, 감정과 음색의 어울림이 중요한 프로젝트가 바로 티미르호 아닌가. 다행히도 곡을 받고 처음 연습을 해 본 결과, 뭔가 될 것 같은 ’필’이 왔다 한다.
"클라리넷의 경우, 뭔가 안개 낀듯한 음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집에선 몽환적이면서도 어둡고, 농밀한 얘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첼리스트 또한 가슴을 퉁 하고 울릴 정도로 무겁고 농밀한 음색을 내 주니, 생각했던 그림이 나올 것 같았죠."(김재훈)
2집 타이틀은 ’동화(動話)’. 말 그대로 ’움직이는 이야기’다. "제일 쉽게 받아들여지는 의미는 어린이들의 이야기지만, 저는 moving story를 생각하고 썼어요. 영어로 하면 ’감동적인 이야기’라는 의미도 되거든요. 한자어지만 함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타이틀로 하게 됐어요."
1집에서 활용된 리코더와 어쿠스틱기타에서 변화를 주고 싶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이는 선장 김재훈의 내적 성장과도 궤를 같이 했다. "1집이 유년기를 떠올리게 하는 악기 구성이었다면, 2집에는 음대 재학 후반부의 느낌을 담게 됐고, 제가 제일 사랑했던 관악기와 현악기를 쓴 겁니다." 악기 구성만 봐도 클래식함이 더해진 느낌이다.
"나이 먹은 거죠(웃음). 음악을 하면서 제 인생도, 제 음악도 책임져야 하는 나이가 됐고요." 음악에 담긴 성찰의 깊이가 예사롭지 않다 싶었다. "1집이 점을 하나 찍은 거라면, 2집은 점을 하나 더 찍는건데, 그 점과 점을 이으면서 방향성이 나오잖아요. 방점을 어디에 찍을 지 고민이 많았죠."
20대 중반에 찾아온 질풍노도는 거셌다. 거센 파고를 이겨낸(혹은 이겨내는 중인) 그의 결론은 음악이었다. "주위에서 진로에 대한 얘기들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결국은 계속 음악 하겠다, 음악 하면서 생긴 상처 음악으로 풀겠다 였어요." 2집 마지막 수록곡 ’1010’은 오피스텔 1010호에서 겪은 그의 음악적 산고를 오롯이 담아냈다.
여행은 시작과 끝이 극명했다. "날개짓 하다 하늘로 올라가는 극적인 장면"에 이어 "은빛 호수를 바라보며 하늘을 나는 장면을 떠올리기도" 했다.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풍경"도 곡 가운데 수록됐고, "오마주 하고 싶은 인물의 집에 들어가보기"도 했다.
호기심으로 가득한 출발과 아름다운 여정은 하지만, 이내 미스터리하게 마감된다. 역시 마지막 곡 ’1010’이다. "예쁘게 끝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뭔가 끝나지 않은 듯, 이해할 수 없게 사라져버린듯한 느낌으로 끝나는 게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많은 여행지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여행지(곡)가 어디였는지 묻자 "여행 그 자체가 재미있었어야 했는데"라며 고른 곡이 ’1010’이다. 오피스텔 1010의 기억은 "뇌구조 90% 이상이 티미르호였다"는 김재훈에게 상당히 강렬했었나보다.
"’1010’이란 곡은, 무언가 딛고 일어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좋았어요. 앞의 곡들과 달리 ’1010’은 그저 무미건조한 관조거든요. 기쁨도 슬픔도 없는, 무감정이죠. 오히려 다시 돌아와 기절한다는 미스터리한 느낌으로 꾸몄는데, 돌아왔을 때 한 단계 성숙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김재훈은 "이때쯤 떠나야겠다는 금단증상 같은 게 있다"며 말을 이었다. "영감이 늘 팍팍 떠오르는 건 아니거든요. 그 곳에 익숙해지면 만나게 되는 자아가, 뭔가를 쓰게 되는 거라서요." 아직 김재훈 선장은 ’동화’ 호의 닻을 아주 내리진 않은 듯 했다.
"티미르호의 여행을 얘기할 때, 항상 요리로 말씀 드리는데요. 스테이크는 늘 대대로 맛있지만 때론 지겨울 때도 있죠. 깊은 맛에도 지루하거나 심심할 수 있는데, 저는 요리하는 과정도 다 보여드리고, 새로운 곡을 들려드리고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또 제가 음악을 들려드리는 건, 이번에 새로운 요리를 만들었는데 맛 보시겠어요?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이어 그는 "일반적인 깊은 맛과는 다를지라도 ’오’ 하는 감탄사가 나올 수 있게, 앞으로 어떤 요리를 만들까? 혹은 이 요리사가 어떻게 커갈까? 그런 것도 눈여겨 봐주시면 좋겠다"고 음악 팬들에게 어정어린 당부를 부탁했다.
역으로 말해 어쩌면 이는, 거센 파도와 세찬 바람을 대변하는 ’천편일률적인’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도, 티미르호 같은 젊은 음악인들이 꾸준히 항해를 이어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지난 1월 말 2집 발매 콘서트 ’움직이는 이야기’를 성황리에 마친 티미르호는 오는 4월 7일 강동아트센터에서 또 한 번 단독 공연을 연다. 또 3월 22, 23일 EBS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해 음악팬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포니캐년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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