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조연을 넘나들며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연기자. 18일 개봉하는 ‘부러진 화살’에서는 법대로만 해달라는 고집불통 교수로 사법부에 정면 도전하는 인물을 연기했다. 2007년 ‘석궁 테러’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속 캐릭터는 재판장과 타협하지 않는 인물로 ‘재판을 개판’이라며 울분을 토로한다. 또 같은 날 개봉하는 ‘페이스 메이커’에서는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국가대표 마라톤 감독을 맡았다.
“솔직히 사회성이 짙고, 주제의식이 강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완성도도 있고 영화·예술적 가치고 있다고 생각해 참여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런데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관객의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결과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발해야지’라는 마음이나 ‘예술적인 영화니까’라는 마음이 시작은 다르지만 결과는 어찌됐든 같다고 생각한다.”
그는 “극중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내가 가진 모습을 많이 자제하려고 노력했다”며 “주인공을 하면 보통은 관객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좋은 사람, 좋은 이미지를 갖으려고 하기 마련인데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려 했다. 그런 점이 못 보던 모습이라 좋다고 하더라”고 웃었다.
그는 “요즘 현장에서는 배우, 스태프, 감독할 것 없이 내가 최고 선배”라며 “서로 편하게 대하기 위해 감독님이라는 호칭 대신 감독이라고 줄여 부르는데 이번에는 정 감독님이라고 불러야 편해 좋았다. 내가 약간 기댈 수 있는 그런 마음이었다”고 좋아했다.
안성기의 말대로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영화계는 변했다. 현장을 오랫동안 지켜왔던 그에게 변화를 물었다. 그는 “영화라는 것 자체를 사람들이 존중해주지 않았다. 예전에는 메시지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없었다”며 “영화하는 사람들이 사회 비판 같은 것은 못하고, 사랑이야기만 해서인지 주위에서 보는 시각도 좋지 않아 솔직히 속상했다”고 털어놓았다.
“예전에는 장소 섭외를 할 때 ‘촬영 좀 해도…’라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에이 필요없어’라며 문전박대를 당했고, 천대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영화 자체가 영향력도 커졌고, 잘 만들어지고 있어 어디를 가든 조금은 환대를 받는다.”
안성기는 또 “1970년대 후반 성인으로서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 내가 영화를 평생 할 텐데 영화를 하는 사람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예전 연기자들을 막 사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 요즘 사람들은 모르지만 예전부터 영화계를 봐온 사람은 ‘변했구나’라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 내가 하나의 역할을 한 게 좋다”고 뿌듯해 했다.
“극중 김 교수가 본인의 원리원칙을 따지듯 나도 영화만 한다는 다짐을 했다. 물론 김 교수와는 달리 부드럽고, 또 사람들에게 친화력 있게 해왔다. 다른 부분에서는 거절도 못하면서 살아왔지만 영화만큼은 대쪽같이 지켜왔다. 그렇게 55년이 버텨졌다. 또 영화배우로 쭉 있어 와서 나를 찾는 것 같다. 사업이나 다른 것들을 하며 왔다 갔다 했으면 안 됐겠지. 그런데 내가 꼼짝 않고 있으니까 그들도 부담스러운 건 아닐까?”(웃음)
영화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여러 가지 직함을 얻게 된 안성기.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 굿다운로더캠페인 공동위원장,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며 바쁘다. 대부분이 영화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들.
안성기는 여러 가지 일들로 바쁘지만 만족하고 재미있어 했다. 인터뷰에 앞서서도 굿다운로더 캠페인에 참여할 가수와 배우들을 섭외하는데 힘을 쏟는 모습이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 사진 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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