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이 남아요. 메디컬드라마 한 번 더 하는 건 어떻겠느냐고요? 불러만 주시면 땡큐죠.”
배우 류현경(28). 안방극장 시청자들에겐 다소 낯선 얼굴이지만 잡식성 영화 팬이라면 그녀의 얼굴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신기전’ ‘방자전’ ‘시라노 연애조작단’ ‘쩨쩨한 로맨스’ ‘마마’ 등 다수의 영화에 출연하며 탄탄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아 온 ‘충무로의 미친 존재감’이기 때문.
예쁜 외모에 개성파 연기자로 주목 받아온 류현경은 3년 만의 드라마 컴백작인 MBC 토요 드라마 ‘심야병원’에서 의리와 뚝심 있고 강단 있지만 왈가닥인 레지던트 홍나경으로 분해 두 달여간 시청자들과 호흡했다.
‘심야병원’은 아내를 잃은 의사가 살인범을 잡기 위해 심야에만 개원하는 병원을 이끌어가며 진행되는 에피소드를 다룬 옴니버스 드라마로 각각 세 명의 작가 및 연출자의 공동 작업으로 완성됐다.
메디컬 스릴러 장르를 표방한 ‘심야병원’은 초반 시놉시스가 후반부로 갈수록 달라지면서 사건 중심의 극 전개가 이뤄졌으며, 그 속에서 여주인공 류현경의 존재가 모호해지는 상황까지 직면했다. 최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류현경은 ‘심야병원’ 종영에 대한 홀가분한 심정과 아쉬움을 밝혔다.
“‘심야병원’은 메디컬 서스펜스, 메디컬 스릴러 장르인데 메디컬적인 부분이 거의 사라진 것 같아요. 작품 하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열심히 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빨리빨리 찍어야 하는 촬영 환경 속에서 연기하는 그 순간의 행복감, 희열을 느낄 여유조차 부족했지만, 그래도 어떤 상황이라도 내가 잘 하면 되는 거잖아요. 전 아직 그런 그릇이 못 되는 것 같아요. 늘 도움을 받으며 해왔는데, 제가 알아서 잘 해나가야 하는 부분이 부족했던 거죠.”
모처럼만의 드라마, 그것도 첫 주연작인 ‘심야병원’은 류현경에게 물리적, 심리적 고생도 줬지만 한 단계 성숙해지는 단계로 작용하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홍나경(류현경 분)이 허준(윤태영 분)에게 고백하는 장면이다.
“사실 그 고백 씬의 경우 뜬금없는 고백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비록 편집돼 드라마엔 등장하지 않았지만 실제 나경의 마음이 드러난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촬영 하면서 굉장히 슬펐어요. 그런데 개연성이 부족해서였을까요. 캐릭터에 몰입해 찍었는데 욕을 먹게 되더군요 하하.”
무엇보다 ‘심야병원’은 류현경에게 치열함이란 무엇인지 일깨워 준 공간이기도 했다. “그동안 제가 너무 나태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치열해져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원래 내 스타일을 고집해서만은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순발력도 배웠죠.(웃음)”
하지만 메디컬드라마적인 요소가 묻힌 점은 두고두고 아쉽단다. ‘심야병원’을 통해 봉합의 달인이 된 류현경은 “봉합은 정말 잘 할 수 있는데, 너무 아까운 것 같다”며 “메디컬드라마 한 번 더”를 힘차게 외쳤다.
‘심야병원’을 떠난 류현경은 현재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감독 김조광수) 촬영에 나서고 있으며 SBS 금요 시트콤 ‘도롱뇽도사와 그림자 조작단’ 출연을 앞두고 있다. 시트콤 출연 역시 데뷔 첫 도전이라는 점에서 남다르다.
극중 류현경의 캐릭터 봉경자는 겉으로는 과학수사를 추구하는 듯 보이지만 샤머니즘을 신봉하며 화투점 운세에 의지하는 강력계 여형사로, 생활 질서계로 좌천당한 후 강력계 복귀를 위해 2인조 강도단을 쫓는 도중 도롱뇽도사를 찾아갔다가 가짜 도사단과 엮이며 좌충우돌 한다.
30대를 코앞에 둔 현재의 심경도 크게 다를 건 없다. “30대가 된다는 거, 아무렇지도 않아요. 동안이잖아요 하하. 마음가짐에 큰 변화는 없어요. 더 좋은 날들이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감은 있어요. 30대라는 나이 때문에 철 없는 것에 대한 제약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스타라기보단 아직은 ‘배우’인 까닭에 작품에서 밀려난 경험도 없지 않다. “작품이 맘에 든다면 주연이든 조연이든 상관 없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지만 아쉽게 놓친 작품에 대해선 ‘분명 내가 해서 좋은 게 있을텐데, 왜 그걸 모를까?’라고 당당하게 받아들이며, 좌절하기보단 절치부심 한다.
“에너지를 묵혀놓는 스타일이 아니라, 늘 쏟아놔야 하는 것 같다”는 류현경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의 원천은 긍정이다. 어떤 고된 상황도 긍정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그녀는 이미 ‘무한도전’ 노긍정(노홍철)도 울고 갈 ‘류긍정’ 그 자체였다.
캐릭터 속엔 늘 자신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는 그녀의 말을 곱씹어보니 문득 ‘심야병원’ 속 나경이 떠오른다. 불 꺼진 ‘심야병원’을 떠난 홍나경의 1년 후, 달라진 모습과 같이 2012년 새 옷으로 갈아입는 류현경이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팽현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