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은 일본 대형극단 ’시키’가 인정한 성량의 소유자로 작사, 작곡 능력을 갖춘 싱어송라이터이자 일본어, 이탈리아어, 영어에 능통한 실력파 가수다.
서울대학교 성악과, 동 대학원을 수석 졸업한 이정현은 서울대 오페라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음악을 섭렵했다. 대학원 재학 중이던 2003년 드라마 ’노란 손수건’ OST를 시작으로 이후 ’장밋빛 인생’, ’동이’, ’인생은 아름다워’ 등 다수의 드라마 OST에 참여하며 대중과 목소리로 교감해왔다.
지난해 1집 ’테너 이정현’으로 솔로 가수로 정식 데뷔한 그는 최근 정규 2집 앨범을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이정현만의 음악 세계를 펼쳐보인다.
"인기 있는 드라마 OST에 제가 부른 노래가 삽입된다는 건 기쁜 일이지만, 제가 추구했던 음악 방향과 달랐던 것도 사실이었죠. 이번 앨범은 세세한 부분까지 다 관여해 진짜 제 음악을 담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앨범 타이틀도 ’True’다.
이정현이 성악을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대중가수를 꿈꿨던 그는 뜻밖에도 음악 선생님의 추천으로 성악도의 길에 접어들었다. 소위 엘리트 코스를 거쳤고 후학을 양성하는 위치에까지 올랐음에도 불구, 꿈꿔왔던 대중음악에 대한 목마름은 가시지 않았다. 결국, 선택의 기로에 선 그는 어릴적 꿈을 택하며 제 2의 음악 인생을 열었다.
"정식 솔로 앨범을 발매한다는 건, 완전히 이 길로 온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에 사실 다시 돌아가긴 쉽지 않겠죠. 유학 다녀와 교수가 되는 길이 더 안정적일순 있겠지만 10년, 20년 후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정현은 "테너는 50살 정도까지 전성기 소리로 노래할 수 있다. 앞으로 노래할 수 있는 시간이 15년 정도 된다면, 지금부터는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부연했다.
2집 타이틀곡 ’천의 바람이 되어’는 일본 및 국내에서도 큰 사랑 받고 있는 곡으로 테너 이정현만의 진정성을 담아 남성적인 깊이감과 웅장함을 더해냈다. 국내 유일한 정식 커버곡이라는 점에서 자부심도 대단하다.
이밖에 국내 최고의 재즈 보컬리스트 웅산과의 하모니가 돋보이는 ’달빛의 마법’과 테너 김영환과 부른 듀엣곡 ’꿈의 노래’, 해금연주가 꽃별이 참여한 ’애불완(愛不完)’, 티미르호의 김재훈이 작사작곡한 ’여행’ 등 다양한 장르의 곡들이 수록됐다. 프로듀싱 과정 전반에 참여한 만큼 앨범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1집에는 격정적인 음악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편안한, 부담스럽지 않음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요." 테너 바떼(음유시인)라는 수식어와 같이 서정적인 음악이 듣을수록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성악에서 팝페라로 전향하면서 달라진 점 혹은 어려운 점은 없을까? "순간적으로 감정 몰입을 해야 한다는 점이 만만치 않더군요. 또 클래식을 할 땐 마이크 없이 육성으로 6천석 관객도 채우곤 해야 했는데, 지금은 마이크가 있는 대신 훨씬 정교하고 깨끗한 소리를 내야 한다는 게 다른 것 같습니다." 스스로 ’중고신인’이라 칭하는 그는 천천히 과도기를 넘어서고 있는 듯 했다.
팝페라 장르로 넘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 음악적으로 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락, 발라드, 댄스 등 다양한 음악을 즐겨 들었다는 그다. 함께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 여가수를 묻자 f(x) 크리스탈을 꼽는다. 사심이 섞인 것이냐 묻자 "음색이 매력적이다"는 프로페셔널한 답변이 돌아온다.
"공허함도 있었지만, 진짜 성악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물론 했었습니다. 성악만 듣고 성악만 했던 적도 있었죠. 하지만 저도 대중음악을 하고 싶은데, 제가 제일 잘 하는 게 성악 발성이니까. 그렇게 대중음악 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다양한 무대와 매체를 통해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팝페라 가수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이정현만의 무기는 무엇일까? 그는 "기존 분들이 좀 여성스럽게, 예쁘게 음악을 표현했다면 나는 남성스럽게, 목소리에 무게도 있는 거 같고 좀 깊은 느낌이 아닐까 싶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성악 테너의 경우 30대가 돼야 비로소 본질적인 소리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지금부터가 전성기라 할 수 있겠죠. 늦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제 소개를 해야 관객들이 알아봐 주시지만, 언젠가는 아무 설명이 필요 없는, 그런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눈 앞의 목표는 "좋은 노래를 불러야겠다"는 것이지만 언젠가 K-POP을 해외에 알리는 가교 역할도 하고 싶다는 이정현. "한국의 음악 소비 패턴이 편식하고 있는 건 사실이잖아요. 대중이 편식하지 않고 다양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게 하는 데 한 몫을 하는 것 역시 기쁜 일 아닐까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포니캐년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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