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 감독은 영화 ‘사물의 비밀’의 17일 개봉을 앞두고 떨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영국 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한 그가 처음으로 대중에 선보이는 영화가 어떤 평가를 받을 지 기대하고 있는 눈치. 떨리지만 연출 의도와 의미 등에 대해 자신이 가진 생각과 하고 싶은 말을 다 털어놓았다.
이 감독은 “영화는 무조건 재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연출가다. “어떤 장르든지, 얼마나 예산이 들어가든지 상관없이 재미라는 것에 호기심을 느끼지 않는다면 영화를 만들 이유가 없어요. 호러를 만들어도 간간이 웃기려고요.”(웃음)
‘사물의 비밀’은 이 감독의 생각이 오롯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혼외정사에 대한 논문을 준비 중인 마흔 살 사회학과 교수 혜정(장서희)과 연구보조로 참여하게 된 스무 살 심리학과 학생 우상(정석원)과의 사람을 담은 멜로영화.
이야기는 멜로지만 복사기와 카메라라는 두 사물을 이용해 혜정과 우상을 지켜보고 내레이터 역할을 시켜 관객을 웃기고 감동하게 만든다. 모든 영화에 유머가 담겼으면 하는 감독의 말대로 사물은 물론, 장서희와 정석원 등 출연진의 대화 및 행동에서도 ‘풋’하고 웃음을 줄 때도 있다. 특히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사물들에게 바치는 송가’에서 착안한 사물들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한다.
주위에서 자신을 부르는 별명이 ‘짱구’라는 이 감독. 그는 자신이 첫 영화로 멜로를 한다고 하니 주위에서 놀랐다고 했다. “네가 멜로를 한다고? 정상적이지 않은데?”라고 했다는 것. 하지만 유머 요소를 보고 “그럼 그렇지”라는 반응이란다.
2008년 12월 차린 영화사 필름 프론트 대표이기도 한 그는 이번 영화를 내놓기까지 4전5기(네 번의 영화가 엎어졌다) 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공동으로 쓴 이동훈 작가와 함께하며 의견 대립도 있었으나 결국 흥미로운 작품을 탄생시켰다.
이 감독은 이 이야기를 극중 횟집 주인과 그 집에서 일하던 젊은 남자가 눈이 맞아 정사 신을 벌이는 6분 동안에 녹여냈다. 6시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찍었다. ‘가장 아름다운 화면 구성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으로 색을 입히기도 하는 등 여러 시도 끝에 탄생한 신이다. 이 장면은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등 해외영화제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기도 해다.
이 감독은 “날 것 같은 느낌으로, 있는 그대로 찍고 싶었다. 저잣거리 냄새가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하며 만족해했다.
주인공 장서희와 정석원은 이 영화를 통해 그간 자신들이 쌓아온 ‘복수의 화신’이나 ‘스턴트맨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을 것 같다. 두 사람이 감독에게 감사해야 할 것만 같을 정도다.
이 감독은 장서희가 촬영을 하며 겁을 많이 냈고, 심호흡도 많이 했다고 전했다. 신인이었던 정석원은 일정한 틀이 없었기 때문에 촬영 전 3개월을 연기 연습에 매진해야 했다. “저희 모두 한 성격했어요. 어떤 때는 팽팽하기도 했죠. 제가 성격이 약한 친구랑은 사귀지 않거든요? 있는 그대로 얘기하고 잘못된 것은 고치고, 발전해 나가는 걸 좋아해요. 그렇게 해서 나온 영화죠.”(웃음)
누아르 장르를 차기작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작품 역시 비밀을 파고 들어가는 영화가 될 것이란다. 역시나 유머도 포함될 예정이다. 이 감독은 “누가 봐도 필름 프론트 영화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독특하고 재밌는 영화들을 계속해서 만들고 싶다”고 바랐다. 물론 “이번 작품이 잘 돼야 차기작도 더 빨리 나올 텐데…”라며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 사진=팽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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