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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7년차. 연차에 비해 작품 수가 많지 않은 김연주는 MBC 아침드라마 ‘주홍글씨’를 마친 지 불과 4개월 만에 ‘영광의 재인’에 합류했다. 10개월 장정을 마친 뒤라 쉬고 싶었을 법 하지만 김연주는 “강은경 작가님, 이정섭 감독님 작품이라면 무조건 해야겠단 믿음이었다”고 말했다.
강은경-이정섭 콤비는 지난 해 국민드라마로 꼽힌 ‘제빵왕 김탁구’를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그간 ‘악역’ 단골 배우였던 김연주로서는 욕심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 있는, 공감 가는 악역을 하고 싶었어요. 캐릭터가 살아있단 느낌을 받았죠.” 제 2의 ‘서인숙’ 탄생이 예고되는 순간이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재벌집 딸 연기는 그만 하고 싶다’고 말했던 김연주. 이번엔 악착같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여비서 경주를 만났다. “재벌집 딸만 네 번 했어요. 거의 다 재벌집 딸 역이었죠. 그런데 신분이 급 하락하니, 이전에 비해 더 생각이 많아졌어요. 재벌집 딸은 원하는대로 다 가질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러질 못하잖아요. 비서 역할은 처음인데 정말 멸시감도 생기고 하하. 생각이 많고 고민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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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자존심이 센 친구잖아요. 하지만 무시, 멸시 당할 수 밖에 없는 현실들. 그 부분이 공감이 갔어요. 현실감 있는 캐릭터 같아요. 계산적인 인물이라기 보단,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선 그 정도 계산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경주를 보면 가슴이 아파요.”
고민을 많이 가진 인물인 만큼 연기로 표현해내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전작 ‘주홍글씨’와 비교해도 “매 씬마다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된다”고 털어놓는다. “차라리 대사가 있음 나을텐데 표정이나 눈빛으로 표현해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내면을 보여주는 게, 훨씬 고민을 많이 하게 돼요.”
특히 그녀가 주로 극중 마주치는 인물은 박성웅, 손창민, 최명길 등 쟁쟁한 대선배들이다. “제가 키를 쥐고 그분들을 위협해야 하는데, 선배들에게 밀리지 않으려면 뭔가 내공이 있어야 하잖아요. 어휴...”
중학교 때 우연히 출연하게 된 청소년 단막극 ‘사랑이 꽃피는 교실’ 이후 연기자의 꿈을 꾸며 안양예고에 진학한 김연주는 1999년 미스코리아 진에 선발되며 한국을 대표하는 미(美) 전도사로 나서게 됐다. 이후 CF 모델 등으로 활동하며 방송일에 뛰어든 김연주는 2005년 드라마 ‘슬픈 연가’에서 여주인공으로 파격 발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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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었는데, 감독님은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표현할 수 있게 기다려주셨고, 지켜봐주고 믿어주셨어요. 그 때부터 자신감이 생겼죠. 행복했던 작업이었습니다.”
‘주홍글씨’에서 만난 김영호, 이승연, 조연우 역시 김연주에게는 큰 힘이 됐다. “주인공 선배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났거든요. 부담감이 컸는데, 김영호 선배님 조언 덕분에 작품을 잘 끝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승연언니도 비슷한 입장(미스코리아 출신)에서 연기를 시작한 제게 조언을 많이 해주셨고요. 다른 드라마에서 얻을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얻게 됐죠.”
유난히 시원하게 큰 눈에 깊은 쌍꺼풀이 인상적이라 외모 얘기를 건네자 “수술했냐는 얘기도 참 많이 들었다”며 웃어버린다. “어려선 외모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고, 악플도 고민했는데 지금은 그런 걸 고민할 시간이 없어요.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너무 많아서요. 지금은 내가 표현만 잘 해낸다면 악플이 달려도 신경 쓸 부분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달라지게된 계기는 다름 아닌 공감을 산 악역이다. “‘주홍글씨’ 속 혜란이 인간이 할 수 없는 악행을 다 했는데도, 의외로 동정표가 많았어요. 극중 인물을 이해하며 연기를 하는 느낌이 묻어나왔나봐요. 그런 부분에 시청자들도 공감을 해주신 것 같아요.”
김연주의 이력 중 미스코리아 출신 보다 더 눈에 띄는 부분은 토익 점수다. ‘슬픈 연가’ 이후 연기를 중단하고 진로를 고민하더 와중 ‘노느니 뭐하냐’는 마음으로 토익 시험을 준비했다고.(물론 대학원 진학을 위한 이유이기도 했다.) 매일 새벽반을 끊어 다니며 악을 품었기 때문일까. 3개월 만에 토익 900점을 거뜬히 돌파했다.
당시에 대해 김연주는 “미스코리아 대비할 때도 그랬고, 매 해 업그레이드되는 기분이었는데 당시에 내가 정체돼 있는 느낌이 들었다. 연기를 고민하기에 앞서, 무언가를 할 수 있게 준비하자는 마음이었다”고 털어놨다. 대학원에서 연극연출을 전공한 김연주는 논문 학기만을 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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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당당하게 “연기가 천직인 것 같다”고 말하는 김연주. “너무 어릴 때 화려한 무대에 서다 보니 적응을 잘 못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30대에 들어선 지금은, 저 역시 많이 성숙해진 것 같아요. 성취감도, 노력해서 얻는다는 기쁨도 생겼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확고하기 때문에 고민도 덜 하고, 안정적이 된 듯 합니다.”
20대, 연기자로서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슬기롭게 이겨낸 김연주의 지금부터의 행보를 주목하고 싶어지는 이유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팽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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