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커플즈’(감독 정용기)는 껍질을 벗기면 벗길수록 색다른 맛을 선사한다. 한 커플이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드러낸듯하면 다른 커플이 또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한다.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한 영화지만 숨은 그림 찾기 게임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는 한 커플의 첫 만남에서 결혼에 골인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듣는 인터뷰 장면으로 시작한다. 급작스러운 버스 급정차를 계기로 서로가 인연이 돼 결혼에 이르게 됐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커플의 운명 같은 만남 이면에는 또 다른 커플들의 이야기가 얽히고설킨다. 그 과정에서 웃음과 재미를 듬뿍 담아냈다. 커플들의 이야기가 연계되는 과정들이 무릎을 탁 치게 만들 정도다.
한 분위기 좋은 고급 음식점에서 청혼을 하려했는데 문자 한통을 남긴 채 떠나버린 애인 나리(이시영)를 찾고자 하는 유석(김주혁). 흥신소를 운영하는 친구 복남(오정세)에게 아직도 못 찾았느냐며 통화를 하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농구공에 깜짝 놀라 핸들을 꺾는다. 버스를 급정차 시켜 한 커플을 탄생시킨 건 유석 때문이었다.
접촉사고가 나 드러눕는 택시 기사를 간신히 진정시킨 유석은 대출금을 갚으라는 독촉에 은행에 갔다 강도를 만난다. 하지만 이 어처구니없는 현장에서 만난 교통경찰 애연(이윤지)과 인연이 깊어지고 사랑의 감정을 싹 틔운다.
나리는 음식점을 나오다 넘어졌는데 젠틀한 병찬(공형진)의 도움을 받고 사랑에 빠져들고 만다. “돈이 제일 좋다”는 ‘꽃뱀’ 나리는 ‘조직폭력배’ 병찬의 돈가방을 호시탐탐 노리고 결국 가로채는데 성공한다. 유석의 부탁 반, 좋아하는 감정 반으로 나리를 쫓던 복남은 돈가방 사건에 휘말리고 이야기는 종잡을 수 없다.
영화는 이런 얼개로 김주혁, 이윤지, 이시영, 오정세, 공형진 등 다섯 남녀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주인공들은 110분 동안 극에 골고루 포진, 자신들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특히 코믹한 연기의 절정을 보여주는 오정세, 이시영의 활약은 눈에 띈다. 스크린에 처음 도전하는 이윤지는 소극적으로 말하는 투와 표정, 행동 모두 귀엽다. 그는 또 커다란 반전도 선사,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한다. 김주혁은 약간 무겁게, 공형진이 약간 가볍게 연기하는 것도 극의 재미를 더한다. 로맨스 보다 코미디를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극 초반은 ‘순둥이’ 유석과 애연의 로맨스에 집중한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에피소드가 나오면서 급선회한다. 후반부는 돈가방을 두고 나리와 병찬, 복남이 코믹스럽게 연결되는 게 중점이다. 로맨스와 코믹이 합쳐져도 전체적인 극의 흐름이 깨지지 않는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를 적절하게 이용, 보는 이들을 즐겁게 만든다.
각 사건들을 연결하는 신 때문에 똑같은 장면이 몇 차례 있어 눈에 거슬릴 수도 있다. 하지만 각 인물들의 사건에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것이기에 어떤 지점이 겹치는 지를 찾는 것이 쏠쏠한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꼬집을 수도 있다. 각 인물들의 만남이 너무 정확한 타이밍 아닌가하는 점 말이다. 하지만 연이 있으면 만나게 된다는 말을 믿는가. 그렇다면 수긍할 만하다. 남녀가 인연이 돼 사랑에 빠졌는데 주위에 누가 있는지,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다. 아마 관심도 없지 않을까.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에 태풍을 일으킬 수 있는 것처럼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 설정이다. 여기에 복잡한, 그러나 그렇게 심하게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될 ‘사랑방정식’이 가미돼 미
‘가문의 영광’ 시리즈를 두 편이나 연출했던 정용기 감독이 우치다 켄지 감독의 일본 영화 ‘운명이 아닌 사랑’을 원작으로, 자신만의 코믹적인 색깔에 탁월한 화면 구성 연출력을 선보인다. 11월3일 개봉.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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