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레이디’를 들고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베송 감독을 12일 부산 한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유와 영화에 대한 철학과 등에 대해 진솔하게 풀어놨다.
“양자경씨가 이 이야기를 들고 찾아왔는데 읽고 나서 너무 많이 울었어요. 시나리오를 덮고 생각하니 이 영화를 꼭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죠. 이 영화는 ‘당연히 해야겠다’ 생각해서 2년 정도 예정돼 있는 스케줄을 모두 취소하고 몰두했습니다.”
‘더 레이디’는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의 삶과 사랑을 그린 영화. 액션과 SF를 주로 만들었던 그에게 이번 영화는 의외의 도전일 것만 같다.
베송 감독은 “다른 세계를 발견하고 묘사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그랑블루’는 바다라는 공간, ‘제5원소’는 하늘, ‘잔다르크’는 14세기 중세가 배경이다. 이번 영화는 아시아에서 일어난 이야기로, 새로운 세계”라고 말했다.
액션을 주로 만들었다는 말에 “감독으로서 진지한 액션 영화를 만든 적이 없다”고 웃었다. 액션 영화를 연출하는 건 ‘지루하다(Boring)’하다고까지 했다. 단지 시나리오를 쓰는 게 재밌고, 즐거울 뿐이다. ‘레옹’도 액션이 아니라 사랑이야기라는 설명. 액션 영화를 위한 촬영 숏들은 짧고 기술도 많이 필요해 싫어한다는 것이 이유다. “30살이 되기 전에는 흥미롭고 재밌었지만 이제는 뭔가를 새롭게 하려는 젊은 신인 감독들에게 기회를 준다”고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제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어요. 제일 우선이 예술적인 것을 생각하죠.”(웃음)
그는 “형사처럼 모든 정보를 캐내가며 어떤 정보와 다른 점이 발견되면 그게 맞는지, 잘못됐는지 하나하나 확인을 했다”며 “미얀마의 수치 여사 집을 1mm도 다르지 않게 그대로 재현했다”고 자부했다. 영국 옥스포드의 길거리와 집도 똑같이 구현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진실이 꼭 영화적이지만은 않다”는 거였다. “영화에 속도감을 주기 위해 어떤 것을 추가할 수 없잖아요. 진실이니까요. 그렇게 하면 그분에 대한 존경심을 무너뜨리는 것이니 그럴 수 없었죠.”
베송 감독은 이 영화가 어떻게 보면 진정한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이해하기 힘들거나 고차원적인 접근이 필요한 영화는 아니에요. ‘상업적이다’, ‘아니다’를 떠나 감정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잖아요. 청소년들은 폭발물을 터지는 액션을 좋아할지 몰라도 40대 이상은 내용이 풍부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나 합니다. ‘킹스 스피치’ 경우도 액션이 아닌데 성공했잖아요.”
그는 특히 양자경의 얼굴이 카메라에 잡히고 남편과 통화하며 우는 장면을 인상깊다고 했다. “카메라 모니터를 보고 스태프가 모두 울었는데 그런 장면을 아주 좋아한다”고 말했다.
베송 감독은 “가택연금이 풀린 뒤에 수치 여사를 만난 적이 있는데 편집이 안 끝나서 아직 영화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수치 여사를 똑똑하고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관대한 분이라고 기억하는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해 흥미와 관심을 보이는 게 인상적이었다”고 회상했다.
가택 연금이 풀린 뒤 수치 여사가 미얀마 난민 교육 문제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다른 계획은 없는지 물었다. “일단 영화는 남편을 잃는 것으로 끝나고 홀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은 오늘날 뉴스이니 다른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어요. 이분이 왜 이렇게 됐는지가 흥미로웠을 뿐입니다.”
그는 미얀마의 정치 현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전했다. “그곳에는 2000여명이 정치적 포로가 돼 있어요. 정치적 회의도 못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에요. 영화에도 나오는, 군사정부를 비판한 개그맨이 군사를 빗댄 농담을 해서 65년형을 받기도 했어요.”
또 “이라크에 대량살살 무기가 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사실 알고보니 없다는 사실에 모두 의아해 했다”며 “언론이 이를 믿고 그대로 받아써서 진실인 것처럼 됐다. 이런 일이 반복되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
아울러 그는 이날 오후 ‘더 레이디’ 기자회견에서 미얀마 정부가 정치범 100여명을 석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농담하는 건가? 믿을 수 없다”며 놀라워했다. 사실임을 확인한 그는 “굉장히 잘된 일”이라고 좋아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해운대(부산)=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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