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말한다. 김주혁은 무난하고 잔잔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배우로서 김주혁은 누구보다 절실하게 노력하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올해로 데뷔 13년차를 맞은 그에게선 어느새 에스프레소처럼 진한 맛과 향기가 난다.
지난해 영화 ’방자전’과 올해 4월 개봉한 ’적과의 동침’에서 팔색조의 매력을 보여준 김주혁이 이번에는 영화 ‘투혼’(감독 김상진)으로 스크린에 복귀한다.
‘투혼’은 팀 내 최고 에이스 투수였지만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은 탓에 골칫덩이 투수가 돼버린 윤도훈(김주혁)과 그의 사고를 수습해온 아내 오유란(김선아)의 개과천선 프로젝트를 담아낸 영화.
김주혁은 극중 야구선수로서 열정적인 투혼을 불태웠다. 작품마다 카멜레온 같은 매력을 선보이며 연기 투혼을 이어온 그이기에 운동선수 역할도 쉽게 소화해내지 않았을까.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육체적으론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론 즐거운 작업이었다.
“추운 겨울에 얇은 야구복 하나만 입고 촬영에 임했어요. 야구장에 바람이 굉장히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땀을 흘려야 되는 장면이어서 물도 많이 맞았어요. 20일 동안 밤샘 촬영하느라 어깨가 나가기도 했죠. 그래도 즐겁게 찍어서인지 힘들다는 느낌은 안 들었어요.”
극중 아내 역으로 출연한 김선아와의 호흡은 서로를 더욱 빛나게 했다. “(김)선아와는 나이도 비슷하고 워낙 사교적인 친구라 빨리 친해질 수 있었죠. 10년지기 부부로 등장하는 만큼 서로의 머리를 흔들며 장난을 칠 정도로 스스럼없이 지냈어요.”
극중 오유란이나 현실 속 김선아가 실제 아내라면 어떠할 것 같냐는 질문에 김주혁은 “실제 이상형도 착하고 배려심 많은 김선아와 닮은 부분이 많다”며 “앞으로 아내가 될 사람은 배려를 받을 줄만 아는 여자보단 그 배려가 배려임을 아는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한국의 휴 그랜트’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김주혁도 어느새 마흔이다. 김주혁이 불혹의 미혼남이기 때문일까 혹은 영화 역시 가족애를 그렸기 때문일까, 이야기는 화두는 자연스럽게 ‘결혼’과 ‘가족’으로 넘어갔다.
“현재 목표는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거에요. 모범을 보이는 가장이 되고 싶고, 아이들에게도 존경받는 아빠가 되고 싶어요. 이번에 아빠 역할을 맡았는데 딸이 정말 귀엽더라고요. 아무래도 나중에 완전 ‘딸바보’ 될 것 같아요.”
최근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무릎팍도사’)에선 자신이 성장한 가정 분위기에 대해 “케이크를 앞에 두고 가족끼리 생일파티를 하는 게 더 어색하다”고 털어놨지만 정작 자신은 “나중에 생일 케이크를 잘라서 딸의 입에다 넣어주는 아빠가 될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스스로 “여우같지 못하다”고 말하는 김주혁. 솔직함이 매력이면서도 내향적인 성격인 탓에 실제와 완전히 다른 성격의 캐릭터를 연기 하는 것이 힘들 법 했지만 “어떤 역할이든 내가 갖고 있는 것에서 조금씩 뽑아 내 하기 때문에 어떤 역할이든 다 잘 맞았다”고 자평한다.
“이번 ‘투혼’에서도 제 안에 있는 윤도훈의 성향을 끄집어냈어요. 평소 보수적인데다 윤도훈처럼 사고뭉치도 아니어서 대리만족도 느꼈죠. 연기하는 동안 내 안의 것을 마음껏 지르며 카타르시스를 경험했어요.” ‘투혼’ 촬영 과정이 즐거웠던 이유, 여기 또 있었다.
언젠가 악역을 통해서도 카타르시스를 느껴보고 싶단다. “유혈이 낭자하는 액션이나 스릴러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멜로 이미지가 강한 편이지만 조금씩 다른 모습도 보여드려야죠. (악역이 잘 어울릴 것 같다 하자) 제 표정 보면 무슨 생각 하는지 모르겠죠? 하하.”
김주혁은 “30대에는 멋모르고 버티기만 했다면, 지금은 넓게 우물을 파기 위해 노력한다. 마흔 살이 되니 연기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더 커졌고, 오히려 에너지가 넘치는 느낌이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연기자로서의 마지막 지향점은 ‘다큐멘터리 같은 연기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가장 사실적인 연기. 결코 될 수 없기 때문에 더 되고 싶어요. 제가 그 인물이 될 순 없잖아요. 최대한 작품 속 인물에 가깝게 ‘연기’하는 거죠. 극단적으로 말하면 마지막으로 미쳐봤으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이 됐음 해요. 그렇게 연기하면, 관객들이 감동하겠죠?”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김현정 인턴기자 psyon@mk.co.kr/사진=팽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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