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다. 가볍게 던지는 대사도 전혀 가볍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양어깨에 알 수 없는 짐을 지고 있어 답답해 보이는 태건호(정재영)는 끈질기게 빌린 돈을 갚으라며 사람들을 쫓아다닌다.
반면, 내내 거짓말의 연속인 차하연(전도연)은 가볍다. 인생을 쉽게 살려 한다. 17세에 낳아버린 딸이 일하는 편의점에 찾아가 인생을 어렵게 살지 말라고 하는 인물이다.
영화 ‘카운트다운’은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극의 중심은 간암으로 10일 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은 건호지만, 그 보조를 탁월하게 맞춰주는 건 하연이다.
건호는 이식수술을 받기 위해 몇 해 전 자신의 아들로부터 심장을 이식받은 하연을 찾아간다. 그는 사기죄로 수감된 하연에게 부탁하고, 하연은 자신을 감옥에 보낸 조명석(이경영)을 찾아달라고 요구한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 그렇게 동행을 시작한다.
영화는 초반부터 액션과 추격전이 이어진다. 전기충격기를 들고 싸움을 하는 건호(싸움을 잘하는 건 아니다)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이 하달 받은 일을 해 나간다. 시장 골목에서 벌어지는 자동차 추격전, 백화점에서 하연이 요구한 돈을 낚아채는 장면 등은 쫓고 쫓기는 강도를 높였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늦추는 등 완급조절을 한다.
무엇보다 정재영과 전도연, 두 배우는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각각이 강한 매력을 내뿜는 캐릭터지만 조화를 잘 이뤘다. 많은 이들을 홀리고, 속일 수밖에 없는 자태(죄수복을 입은 초라한 모습이 잠시 나오기도 하지만 화려함에 더 눈이 갈 수밖에 없다)를 뽐내는 전도연의 팜파탈은 인상적이다. 과묵하고 묵직한 정재영, 존재감이 충만한 오만석도 최고의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오만석은 무거울 수도 있는 이야기에서 유머와 재미를 담당한다.
물론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건 이견이 없을 테지만, 캐릭터들의 개성이 너무 강해 각 장면들이 매끄럽지 않게 느껴진다. 또 건호의 삶을 이해하기에는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 무미건조한 삶을 살다가 문득 삶에 집착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이란 가난한 자나 부자 모두에게 본능적”이라고 말하는 정재영의 말마따나 극은 자연스럽고 본능적으로 흘러간다. 누구나 ‘뒤를 돌아보았을 때 세월이 어느새 이만큼 흘러가 있었나’하고 느끼는 것처럼.
그래도 중요한 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뒤늦긴 하지만 깨달은 바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진실함으로 자식을 사랑하고 보살펴야 한다는 마음. 비록 한 사람에게는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지만, 다른 한 사람에게는 앞 사람을 교훈삼아 살아갈 수 있는
서정적으로 끝내려고 하는 의도 탓에 영화는 전반부와 전혀 다른 느낌이다. 두 편의 영화 같다는 느낌은 관객의 고개를 끄덕이게도, 혹은 가로 젓게 만들 수도 있다. 단편 영화 ‘뉴스데스크’를 연출한 허종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29일 개봉.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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