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을 찾은 관객 대부분이 한 번쯤은 내뱉었을 말이다. 티켓에 적혀있는 영화 시작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건만 광고만 계속해서 상영된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러 와 왜 각종 광고들을 봐야하는 지 모른 채 시간을 낭비한다. 최소 10분, 길게는 20분을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스크린을 쳐다봐야 한다는 얘기다. 거의 대부분의 영화관이 본 영화가 시작되기 전, 최소 10편에서 20편 가량의 광고를 상영한다.
‘영화 시작 10분 전에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바보’라는 얘기도 있다. 로테이션으로 돌아가는 광고 탓에 20분 동안 40편이 넘는 광고를 봐야 할 때도 있다.
대부분의 영화관에 소리소문 없이 ‘에티켓 시간’이 생겼다. 영화관 측은 모르는 이가 태반인 이 용어를 이 같이 정의하고, “고객입장 안내시간”이라고 풀이했다. 주차 등의 문제로 상영관에 늦게 들어오는 관객들을 위한 예비시간이라는 설명이다. 더 풀어서 얘기하면 시작 시간이 오후 6시55분이라고 적혔지만 최소 10분 이상 영화를 일부러 늦게 시작한다는 말도 된다.
물론 이 시간에는 상영 전 필수인 비상 대피로 안내와 다른 영화 예고편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상품 광고다. ‘시간은 금’이라는 상투적인 말을 안 보태도 흘러버린 시간들이 아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최근 오랜만에 강남의 한 영화관을 찾은 직장인 최대영(31)씨는 “재미없는 영화 탓에 광고가 더 기억에 남은 것 같다”며 “영화 시작하기 전 쓸데없는 광고들을 보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영화관 측이 말하는 ‘에티켓 시간’을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몰랐다는 사람들이 더 많다. 최씨는 “본 영화 상영 전에 꽤 많은 관객이 착석해 있었다”며 “다들 광고를 너무 많이 한다는 말들을 속삭이더라”고 전했다.
CGV 홍보팀 관계자는 “영화 상영 시작 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분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영화 상영 전 광고는 영화 입장료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투자 비용이 재순환되고 있는 것”이라며 “시설이나 장비,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광고를 상영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10여년 전, 스크린 화면에는 대한뉴스와 주변 예식장, 안경점 등의 광고가 대부분이었다. 주변 상점들의 광고가 불쾌감을 준다는 관객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다른 수익원을 찾기 위한 방편으로 내놓은 것 가운데 하나가 TV에서 보던 익숙한 상업광고 상영. 2007년부터 다양한 광고가 삽입됐다. 최근에는 TV에서 방송되는 광고의 확장판 등으로 불쾌감과 불만을 덜어주려 노력하고 있다.
CGV 홍보팀 관계자는 “광고 가운데 TV에서 보지 못한 재미있는 광고의 확장판이나 ‘앞좌석을 발로 차지 말기’ 등 영화관 에티켓 관련 재미있는 영상도 만들어 내보낸다”며 “관객들이 불쾌하고 지루하지 않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각종 영화 관련 인터넷 게시판에는 불만을 토로하는 글들이 많다. 영화관 측의 변칙 광고 상영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며 비판한다. 예를 들면 영화 한 편이 시작되기 전, 8개 광고가 상영된 뒤 영화 예고편이 나온다. 하릴없이 기다린 관객이 영화가 시작되나보다 하고 기대를 갖게 하다가 다시 또 광고 6개를 봐야한다는 식이다.
직장인 김지형(39)씨는 “여러 가지 광고를 보다가 다른 영화의 예고편이 시작돼 이제나 하려나 보다 기대했는데 다시 또 상업광고가 나와서 황당했다”며 “심지어 어떤 광고는 두 번씩이나 나오는 것도 있다”고 답답해했다.
이에 대해 CGV 측은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에서 보통 1시간 방송이라고 하면 약 10분 광고를 할 수 있다고 법으로 규정돼 있다”며 “그에 비하면 대부분 2시간이 넘는 영화의 광고 시간은 방송보다 적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에티켓 시간’을 몰랐다는 직장인 노영미(35)씨는 “영화관의 수익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피해를 본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며 “티켓에 광고 시간을 뺀 실제 상영시작 시간을 넣어야 피해를 본다는 생각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영화관 측은 “여러 가지 불평, 불만 때문에 극장을 찾지 않는다면 영화관의 손해니 그 시간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마케팅적으로 리서치하고 연구를 하고 있다”며 “합리적인 선에서 계속 다른 수익원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영화관 운영지침이 모두 다르다”며 “영화 티켓에 예고 및 광고 상영 등에 의해 본 영화 시작이 극장별로 다소 차이가 날 수 있다고
한편 관객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한나라당 박대해 의원 등이 영화 상영시간을 법률에 규정해 티켓에 명기된 상영시간 이후에는 광고 상영을 제한하도록 하는 ‘영화진흥법’ 개정안을 지난 2009년 발의했으나 현재 계류 중이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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