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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가니’(감독 황동혁)는 한 청각장애학교에서 벌어진 아동 성폭행 충격 실화를 극화한 작품으로 공지영 작가의 베스트셀러 ‘도가니’를 읽은 공유의 제안으로 출발했다. 신문기사를 통해 사건을 접한 공지영 작가가 ‘도가니’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냈지만 그에 앞서 MBC ‘PD수첩’(연출 박건식 김재영)이 있었다.
아직 영화 ‘도가니’를 보지 못했다는 박건식 PD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 전화 인터뷰에서 “실망스럽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그는 “방송 이후 곧바로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금방 해결될 줄 알았는데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11월, ‘은폐된 진실, 특수학교 성폭력 사건 고발’ 편을 통해 광주 인화학교 장애학생들에 대한 교직원들의 상습적 성폭행이 세상에 알려졌다. 해당 편이 전파를 탄 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고, 불과 2주 만에 전 행정실장과 재활교사 등 2명이 성폭행 혐의로 구속됐다.
방송 후 일사천리로 해당 사건 처리가 진행됐음에도 불구, 박 PD는 해당 사건에 대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아이템”이라고 회상했다. 지난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검사와 스폰서’ 편도 취재했지만 “그보다 더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왜일까.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교장, 행정실장, 교사 등 관계자들 모두 점잖은 사람들이었다. 만약 사실이 아니라 역소송이 들어올 경우, 우리로선 방어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유일한 증거는 피해자들의 과거 시점 진술뿐이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는 게 가장 어려웠다. 당시 최승호 선배가 팀장이었는데, 선배는 ‘아이들이 불쌍하니 밀어붙이자’ 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 가서 지켜보면 (가해 당사자들이)너무 점잖은 분들이라 고뇌가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소리’였다. “이걸 어떻게 방송하느냐 역시 문제였다. 방송이 사일런트(silent)로 가야 한다는 점. 묵음으로 갈 것인가를 고민했다. 수화를 못 하는 아이들도 상당수여서 수화 하는 아이들과 못 하는 아이들 사이에 통역이 또 필요했다. 1시간 분량의 방송을 묵음으로 가도 되겠는가도 고민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방송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해당 학교를 졸업한 한 여학생이 청각장애 남성과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결혼 전 예비신랑에게 자신의 과거(학교에서 성폭행을 당한 것)에 대해 고백을 했다는 것. 박 PD는 “그 남자가 여학생을 꼭 안아줬다 하더라. 어느 누가 결혼 상대에게 그런 거짓말까지 하겠는가 싶었다. 이 사건이 거짓일 가능성이 거의 없겠구나 싶었고, 이후 밀어붙였다.”
박 PD는 “당시 광주교육청과 시청도 문제가 많았다. 미온적으로 대처했고 문제를 들여다보려는 의지가 없었다. 관할 기관이 더 의지를 갖고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취재 당시 용기를 낸 피해자 가족, 특히 어머니들에게 공을 돌렸다.
“어머님들의 용기가 컸다.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사실 타격이 큰 부분이고, 한편으론 숨기고 싶은 분도 있었을 텐데, 의외로 어머님들이 적극적으로 소리를 내주셨다. 어머님들이 없었다면 다루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역에 묻혀있던 사건은 사회 전체를 들썩이게 했다. 2년 가까이 되는 투쟁 끝에 학교장 등이 성폭력 혐의로 추가 고소됐다. 재판까지 갔지만 정작 피의 당사자들은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데 그쳤다. 사건 고발 후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사과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박 PD는 “결과적으로 기소가 돼 뿌듯하기도 했는데, 뿌듯함은 잠깐이었고 지금까지도 해결이 안 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방송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방송은 이슈화 시켜 주위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후에는 지역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감시가 필요하다. 그 와중에 보람이라면, 공지영 씨가 소설을 썼고 공유가 직접 제안하고 연기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관련 신문기사 한 줄에 충격을 받은 공지영 작가는 곧바로 취재에 돌입, ‘도가니’라는 소설을 써냈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군 복무 중 ‘도가니’ 책을 선물 받은 공유는 전역 후 이를 영화화할 것을 공 작가에게 제안, 직접 영화에 출연했을 정도로 범상치 않은 열의를 보였다. 박 PD는 “이번 영화를 계기로 해서 매듭이 잘 지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가니’ 여주인공 정유미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사람으로서 이 사건을 모른다는 게 창피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도가니’에는 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 열정 그리고 한이 서려있었다. 그런 ‘도가니’가 다시 안개를 헤치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22일 개봉된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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