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필모그래피를 보고 떠오르는 정유미가 연기한 캐릭터의 모습은 다 다르다. 사랑에 헤픈 소녀(가족의 탄생·2006), 따뜻한 마음을 지닌 보이시한 동물생태연구원(차우·2009), 엉뚱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상처받은 스토커(조금만 더 가까이·2010), ‘88만원 세대’의 아픔을 대변한 취업준비생(내 깡패 같은 애인·2010) 등.
남다른 선택을 하는 그의 연기에 팬들은 우호적이고 환호한다. 일부러 특이한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그는 화면 속에서 진정 연기로 승부할 수 있는 배우 가운데 한 명으로 꼽을 만하다.
정유미는 22일 개봉하는 영화 ‘도가니’에서는 사회정의를 위해 힘이 센 세력에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인권운동가 ‘서우진’을 연기했다. 무진의 한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아동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 2005년 광주 인화학교 교직원들이 청각장애 학생들을 성폭행하거나 강제 추행한 실제 사건을 다룬 소설을 영상으로 담은 작품이다.
“이 이야기가 차라리 만들어낸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어요. 실화라서 시나리오를 봤을 때 힘들었고, 부담이 많이 됐죠. 진심을 담아야 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 진심이 담길까 하는 의심도 들었어요.”
정유미는 황동혁 감독과 스태프, 선배 배우 공유가 오랫동안 생각한 바를 믿었고, 그래서 수월하게 따라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 믿음 덕분에 촬영을 하면서 점점 더 이야기의 진심을 알게 됐고, 자신이 부족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됐다.
“처음에는 이렇게 힘들 지 몰랐죠. 표현하는데 서툴거나 하면 안 될 것 같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영화가 완성이 되고 보니 제 마음 속에 가슴 벅찬 뭔가가 더 느껴지더라고요.”
“외면하려는 것은 아닌데,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도와주지 못하는 내 모습도 보이고, 현실의 내 모습을 알게 돼 어려운 점도 있고요. 영화 속 캐릭터 연기의 표현과는 별개로 정말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영화 촬영이 끝났건만 생각과 고민이 다시 많아져 어쩔 줄 몰라 하는 그에게 피해자로 나온 아이들의 연기가 발군이라고 하자 반색하며 칭찬을 늘어놓는다.
“아이들이 정말 진짜 같이 만들어준 것 같아요. 글로 표현돼 있는 것이 영화로 움직이잖아요. 대사도 없이 수화로 그 감정을 모두 표현했는데 그 친구들이라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처절하며 가슴 떨리게 만드는 아이들의 연기와 함께, 가해자를 상대로 벌이는 법정 신도 관객을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만든다.
정유미는 “법정 장면은 실제 농아인이 보조 출연을 해줬다. 뒤에 앉아있는 그분들의 감정과 상황이 확 전달되는 느낌이었다”며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로 꼽았다. 아울러 종반 경찰에게 물대포를 맞는 장면 역시 농아인이 참여해 힘을 실어줬다며 고마워했다.
‘불편한 진실’에 다가가거나 생각하는 것조차 꺼리는 사람들이 은근히 있다고 하자 그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같을 수는 없다”며 “‘불편해’라는 마음조차 이 얘기에 대해 관심은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것이면 만족한다”고 했다.
“영화에 제가 느낀 마음과 감정을 담아냈어요. 관객이 어떤 생각과 느낌으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각자가 보고 난 다음에 어떤 마음을 가지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것 또한 관객들이 느끼는 마음이니까요.”
‘도가니’를 통해 진정성을 담으려는 마음들이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는 정유미. 공유나 감독, 스태프를 만나 다행인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웃었다. 촬영 전, 많은 생각을 했지만 촬영 중에는 온전히 시나리오에 묻혀 진심을 표현하는 것만 생각했다는 그는 이번에도 분명 자신만의 연기를 완벽하게 해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 사진=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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