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연출한 영화인지 의심했다. 사뭇 다른 느낌이다. 평평해졌다고 할까. 남자와 여자의 균형이 맞춰진 것도 주목된다. 줄곧 남성 위주, 남성적 감성이 강하게 전해졌던 전작들과 다름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플러스가 된 듯하다.
영화 ‘친구’, ‘똥개’ 등을 연출한 곽경택(45) 감독의 신작 ‘통증’은 기존에 그가 그려왔던 작품들과는 조금은 다르다. ‘말랑말랑’ 하다. 그동안의 거친 욕설과 폭력적 상황이 잦아졌다고 하면 더 이해하기 쉬울까.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로 출발을 해서 그런가 봐요. 전에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했죠. 이번에는 강풀 작가의 원안에 한수련 작가가 시나리오를 만들었고 그것을 제가 각색했어요.”
곽 감독은 관객과의 접점이 더 많아진 것 같다고 웃었다. ‘통증’을 연출하기 전 시나리오를 보고 세 번을 울었다고 한 그다. 영화를 만들어놓고 관객에 소개하기 전, 그는 몇 번이나 더 눈물이 났을까.
그는 “컨디션 때마다 다르다”며 또 호탕하게 웃어버린다. “수차례 본 장면인데도 음악을 새로 넣으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옆에 앉아있는 PD가 다른 일을 하다가 ‘형, 또 울어?’라고 하는데 무척 창피했어요. 그래도 당당히 말했죠. ‘음악이 바뀌었잖아!!’ 라고요.”
곽 감독은 먼저 권상우의 연기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촬영을 하면서 본인도 놀라웠다. 남순의 연기를 처음 보고 우려 없이 전체적으로 최고의 장면을 채워 넣었다. 그가 꼽은 영화의 강점 중에 하나가 권상우와 정려원의 연기다. 거기에 멜로드라마가 지니는 진솔함이 추가 된다.
“두 사람한테 불어넣으려는 멜로는 자신의 인생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부딪힘이었어요.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소위, 밀고 당기기의 유희보다는 그냥 직설적이면서도 지고지순한 형태로 갈 수밖에 없었죠.”
곽 감독은 솔직히 엄청나게 새로운 형태는 아니라고 털어놓으면서도 “분명 배우들의 연기가 빛이 난다”고 주연배우를 추어올렸다.
그는 장동건, 정우성, 현빈 등 최고 스타 대우를 받는 배우들과 함께 했다. 물론 최고 스타급 배우들과만 호흡을 맞추려는 욕심이 있는 건 아니다. 곽 감독은 “일단 배우들이 작품에 대한 욕심이 있어야 하고, 나와 생각이 비슷해야만 함께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어떤 장면이 슬펐고, 어느 부부이 이해가 잘 안 가는 지 접점이 있어야 수월하다는 설명.
연기자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 SBS ‘기적의 오디션’에 출연 중인 곽 감독이 도전자 김준구를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신작 ‘미운오리 새끼’에 주연으로 발탁한 이유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김준구와 문원주, 이 두 명을 보고 영화 촬영을 하기로 했다.
사실 곽 감독은 ‘기적의 오디션’ 심사위원 요청을 두 번 거절했다. 고심 끝에 발을 들인 그는 “기적의 오디션 출연한 것에 대해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며 “‘미운오리 새끼’ 배우들을 만나 작품을 찍고 행복하니 최고 수혜자는 나 같다”고 웃었다.
“시청률이 잘 안 나오긴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미덕은 연기자가 되기 위한 어떤 지난한 과정에 대해 어느 정도 시청자들이 알게 됐다는 거예요. 무턱대고 연기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잖아요. 어려운 관문 뚫고, 또 운까지 따라야 먹고 살만한 작업이라는 것을 강력히 인지시켜준 프로그램 같아요.”(웃음)
“태풍을 하고 나서 월말마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 때문에 울렁증이 생겼어요. 단순히 몇 억도 아니고 굉장히 큰 금액이었잖아요. 제가 웃고, 농담하고 다니니 모르더라고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작품을 계속하고 있으니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 이 족쇄에서 풀려나겠죠.”(웃음)
그는 “세상에 성공이라는 타이틀을 쥘 수 있는 사람들은 과정과 방식이 모두 다르다”며 “딱 한가지의 공통점은 낙관주의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라디오에서 들었던 이 말은 곽 감독을 낙관적으로, 그리고 또 열심히 살게 만들었다.
드라마 ‘친구, 우리들의 전설’를 연출하며 드라마의 맛도 본 그는 “지상파 방송이라서 하지 말라는 게 너무 많아 불편하고 힘들었다”고 고백했지만, 많은 내용을 다룰 수 있고 세계적으로 알려진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매력도 있다며 애착을 보였다.
드라마를 통해 놀라면서 배웠던 것들을 묵히고 싶지 않다는 그는 벌여놓은 영화 작품들을 마무리한 뒤, 드라마에 또 도전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1997년 ‘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 사진=팽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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