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얘기를 뻔하다 한다. 그렇지만, 뻔해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소재 가운데 하나가 사랑 이야기다.
‘통증’(제작 ㈜영화사 축제·㈜트로피 엔터테인먼트)도 뻔하디 뻔한 영화로 비쳐질지 모른다. 서로 다른 세계에 살던 남자와 여자가 사랑에 빠진다는.
하지만 아가페, 필리아, 스토르게, 에로스 등으로 사랑의 종류를 구별 지을 수 있듯 ‘통증’의 사랑 이야기는 그동안의 멜로와는 또 다르게 가슴을 적시기에 충분하다.
채무자와 (통칭) 채권자가 사랑에 빠진다는 독특한 설정의 멜로지만, 무엇보다 영화의 힘은 권상우와 정려원이라는 매력적인 배우의 조합과 곽경택 감독의 연출력이 제대로 어우러졌다는 점이다.
남순(권상우)은 어릴 적 자동차 사고로 가족을 잃고 그 사고가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을 갖고 살아왔다. 그 후유증으로 심한 상처에도 통증을 느낄 수 없게 된 그는 자해공갈로 남을 위협한다.
길거리에서 머리핀 등을 팔며 근근이 살아가는 동현(정려원)은 행여 조그만 상처라도 날까봐 노심초사 조심한다. 혈우병 환자지만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하고 긍정적이고 밝게 살려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
통증에 전혀 다르게 반응하는 두 사람이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게 된다. 아무런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남순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사랑이라는 위대한 힘을 생각해보면 수긍할 수밖에 없다.
남녀가 다른 세계에서 산다고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비슷한 점을 찾아 나아가면서 가정을 꾸리는 것처럼 남순은 동현과 함께 하길 바란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그래서 더 가슴 절절한 사랑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손등을 벽돌로 내려치고, 쇠몽둥이에 머리를 맞아도 부상은 있지만 심하게 다치지 않는 남자를 연기한 권상우는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남순이 살아온 삶을 오롯이 전한다. 초점 없는 눈, 어색한 사투리 속에서 거친 욕설이 쏟아져 나오긴 하지만 약간은 모자란 듯한 남순은 영화의 재미와 감동을 주기에 더할 나위 없다.
정려원이 권상우와 동행하며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완성시켜 준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지만 세상 풍파를 모두 거친 듯 거리낄 게 없는 정려원의 또 다른 모습을 통해 그의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들어 버린다.
영화 ‘친구’, ‘똥개’ 등으로 남성적인 느낌을 강하게 전한 곽 감독은 ‘통증’에서 특유의 남성적 감각을 누그러뜨렸다. 거친 남자들의 우정과 사랑을 투박하게 담아낸 그는 새로운 변화를 영화 곳곳에 드러낸다. 기존 스타일에서 조금 변화한 ‘사랑’보다 더 남녀의 감정이나 사랑을 말하는 방식, 정서가 감각적이고 아름답다. 아울러 여자 주인공 정려원의 비중도 전작 영화들에 비해 월등히 많다.
늘어지고 지루한 듯한 감이 없지 않지만 정려원이 권상우를 향해 “혀도 짧은 게”, 권상우는 정려원에게 “말라깽이”라고 말하는 대사 등이 지루할 때 쯤 한 번씩 웃음을 선사한다. 배우 김민준과 사희가 카메오 출연하며 웃음을 유발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사랑은 아픔과 상처를 수반한다. 관객은 남순과 동현이 겪는 통증을 적게나마 느낄 수밖에 없을 듯하다. 눈물이 펑펑 쏟아질 만큼 슬프진 않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사랑
만화가 강풀씨의 원안을 바탕으로 만든 곽 감독의 10번째 영화다. ‘사랑보다 깊은 상처’, ‘고해’ 등으로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수 임재범이 OST에 참여, 애잔한 마음을 더한다. 15세 관람가. 9월7일 개봉.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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