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배우’ 송강호와 차세대 여배우 신세경의 만남, 굉장히 파격적인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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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후배의 경우, 처음 만나자 마자 말도 편하게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촬영이 끝나면 늘 방으로 불러 소주 한 잔하며 상의도 하고 호흡도 자주 맞췄다. 하지만 세경이는 여배우다 보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현장에서 만나는 게 다였다. 최대한 적은 시간에 많이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다.”
‘베테랑’ 송강호이지만 카메라 아닌 어린 여자 후배 앞에서 쑥스럽긴 남들과 마찬가지. 매번 상대 여배우를 더 돋보이게 해주는 송강호의 배려심은 남달랐다.
“후배라고 무조건 잘해줄 순 없다. 상대방이 부담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는 것이 선배의 몫이다. 세경이의 경우 털털한 성격으로 빠르게 현장에 적응했다. 어느 순간 ‘연기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은 듯 했다. 그녀의 넘치는 에너지, 열정에 나까지 매료됐다. 점점 편안하고 즐거운 현장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
자신 보다도 후배의 칭찬에 더 신이 나 이야기를 하는 그였다. 특히 첫 호흡을 맞춘 신세경에 대한 그의 칭찬은 끊이질 않았다.
“사실 이번 영화는 멜로를 위한 멜로는 아니다. ‘어떤 사랑이다’고 분명하게 전달해주지도 않는다. 인물 간 오묘한 감정이 영화 전반에 퍼져있다. 신인급 친구에게는 굉장히 힘든 연기다. 하지만 신세경은 자신의 나이와 경력에서 뿜어낼 수 있는 감성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줬다. 굉장히 성숙된 배우다, 기특하다.”
동료들과 늘 함께 있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혼자만의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연기자라는 직업. 그는 무엇보다 이 같은 고독함을 이긴 신세경이기에 그녀의 성공을 확신했다.
“드라마와 달리 영화는 좀 더 충분한 시간 속에서 자신에게 빠져 들어야 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요한다. 특히 신세경은 또래가 아닌 대선배들과 함께 해 정신적 압박감이 컸을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그 누구도 대신 연기해 줄 수 없기에 혼자만의 고민, 좌절감에 빠지기 쉽다. 신세경은 이 모든 것을 이겨냈다. 어느 순간부터 주도적으로 영화에 발을 담았다. 지켜보는 이의 가슴은 벅찼다.”
스크린에서는 한 없이 카리스마 넘치는 그이지만 인터뷰를 하는 내내 그는 뭔가 불안 한 듯 손을 한 시도 가만두지 못했다. 무언가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과일 주스 껍질을 괜스레 주물럭대는 그. 대스타의 오만함은 없었다. 오히려 순수한 미소와 호탕한 웃음 속에서 의외의 귀여움이 엿보였다. 어딘가 모성애를 자극하는 그의 순수한 매력, 이것이 23살 차이가 나는 신세경과 무난하게 멜로 연기를 펼칠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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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연기자 데뷔 23년차. 어떤 배역이든 자신의 꼭 맞는 옷으로 소화해 버리는 송강호. 그에게도 몹시 떨리는 순간이 있을까?
“아직도 스크린 앞에서 내가 찍은 영화를 보고 있으면 손발이 오그라들고 가슴이 떨린다. 열심히 찍은 것 같은데 내 눈엔 부족한 부분만 보이고 아쉬움만 남는 것 같다. 이번 영화는 아직 감상하지 못했지만 시사회에서 분명 긴장할 것 같다.”
그의 손이, 그의 입술이 잠시 동안 멈췄다. 무언가를 골똘이 생각하던 그가 적막을 깨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사실 40대 중반이 돼가다 보니 스스로 안주하려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생길 때가 있다. 안전한 영화, ‘이 정도면 흥행이 되겠다’ 는 감이 오는 작품만을 선택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래서 이 같은 선택을 하지 않으려고 늘 경계한다. 그런 지점이 이제 찾아온 것 같다.”
그의 솔직한 답변에 인간적인 털털함이 느껴졌다. 가만히 있어도 ‘국민 배우’, ‘흥행 배우’, ‘최고의 스타’, ‘대한민국 대표배우’ 등 온갖 황금 수식어가 붙는 그이지만 아직도 연기에 대한 갈증이 넘쳐난다고.
“앞으로도 나는 ‘그냥 송강호’로 불리고 싶다. 응원 차 많은 분들이 감사한 수식어를 붙여주시지만 나는 그냥 배우 송강호일 뿐이다. 매번 주어진 역할의 옷을 갈아입는. 한 제작 발표회에서 농담처럼 말했다. 10년 후에 조연으로 써달라고. 사실 이 말은 진심이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역할이 변화한다. 그 나이에 맞는 행보가 있다. 당연한 일이다.”
그의 눈빛이 다시 진지해졌다. 목소리는 한층 더 깊어졌다. 자신의 먼 미래를 점치며 그는 말했다.
“언제까지나 주연만 할 수는 없다. 내 나이에, 위치에, 작품에 맞는 역할이 있다. 조연이 되고 단역도 해야 할 시기가 올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순리다.”
인터뷰가 끝나고 몇 초간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기자 kiki2022@mk.co.kr/사진 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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