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에서 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시나리오 초고에서 시각장애인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 같았죠. 하지만 ‘어둠속의 대화’라는 공간 전시 체험을 하고 나서 시각장애를 소재로만 이용해 먹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블라인드’의 안상훈(36) 감독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2007년, 6월 ‘블라인드’의 시나리오는 조금씩 살을 찌워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안 감독은 그해 11월 ‘어둠속의 대화’전을 다녀온 뒤 충격을 먹고 ‘블라인드’ 시나리오를 12월에 엎어버렸다. 최대한 리얼리티를 살리고,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오해와 간극을 좁혀보는 영화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생각에서였다.
안 감독과 윤창업 PD는 마음을 맞췄고, 최민석 작가도 2008년 1월 합류해 최고의 팀을 꾸렸다. “저희 모두 성향이나 영화적 마인드가 비슷했어요. ‘이 영화는 휴먼 스릴러 오감 추적으로 간다는 것을 잊지 말자’, ‘관객들이 민수아(김하늘)의 감정 이입이 돼 수아가 울 때, 두려워할 때, 용기 낼 때 같이 느낄 수 있게 하는 영화를 만들자’는 생각을 가졌죠.”
물론 기본적인 틀에서부터 디테일한 설정까지 의견 충돌이 잦았다. 최 작가는 스트레스로 인한 원형 탈모 증세도 생겨버렸다. 하지만 만족할 만한 작품이 나오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일 뿐, 방향이 같은 세 사람은 결론적으로 질 좋고 사랑받는 한 스릴러를 탄생시켰다.
“시각 장애인인 수아가 그 상황을 느끼는 것을 관객에게 시각적으로 어떻게 보여줄까 고민을 많이 got어요.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사진, 그림 등을 찾아봤죠. 디지털 효과를 주는 것은 피하려고 했고, 만화 같아도 안 됐죠. 아날로그 소스를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정해서 표현을 했습니다.”
배우 김하늘과 유승호의 조합도 극에 힘을 실었다. “김하늘이라는 배우가 지금 그 위치에 있는 이유가 있더라고요. 어떤 고민을 본인이 하고, 또 대화를 하면서 만들어지는 부분을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수정 또한 굉장히 빨라요. 승호도 비중을 보면 조금 실망스러울 수 있음에도 작품 전체를 보고 참여한다고 해서 대단하고 고마웠어요.”
그는 “다른 장르는 배우들의 연기나 감독의 디렉션이 어울려 드라마나 감성을 만들어내지만 공포나 스릴러는 정말 영화적”이라며 “그런 게 재미가 있다”고 웃었다. 하지만 “인간의 치부, 추악한 것에 대해 알리려 7년 정도 하다보니 정신적으로 안 좋은 것 같다”며 “다음 영화는 밝고 건강한 작품으로, 휴먼과 코믹이 섞여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장르라는 외피는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다”는 그는 어떤 영화를 만들더라도 나중에도 꼭 지키고 싶은 것은 ‘휴머니즘’과 ‘진정성’이라고 강조했다.
결과물을 내놓고 관객들에 사랑을 받는 것이 영화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그 결과를 내놓는 과정에 대한 애정도 무척 크다는 안 감독.
그는 민수아가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또 핸디캡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누가 봐도 멋있고 완성된 인간으로 재탄생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장르적 반전이 자연스럽게 빠지게 된 것 같다고 웃는다. 반전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욕을 먹고 있
“다음 영화가 기대되는 감독이 되고 싶다”는 그의 영화를 향한 애정과 열정은 ‘블라인드’를 통해 이미 110만여명(영진위 입장권통합전산망 20일 기준)이 보며 실감하고 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 사진=팽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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