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 케어. 왠지 생경한 용어다. 자식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캥거루의 모성에 빗대 ‘치맛바람’ 엄마들의 지나친 제 자식 사랑을 비꼰 말인가 싶지만, 어쩐지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2010년 3월, 호주 여성 케이트는 임신 27주 만에 쌍둥이를 출산했지만 불과 20분 만에 한 아이의 사망 선고를 받았다. 믿을 수 없는 슬픔 속에 아이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맨 가슴 위에 아기를 올려놓은 케이트. 몇 분 뒤, 기적적으로 아기의 호흡이 돌아왔다.
그야말로 ‘기적’으로 불리는 캥거루 케어란 엄마가 아기와 서로 피부를 맞대고 가슴에 감싸 안음으로써 신생아의 정서 안정과 발달을 돕는 육아법으로, 1983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부족한 인큐베이터를 대신할 방법으로 시작됐지만 현재는 의료 선진국에서 폭넓게 시행되고 있다.
19일 방송되는 MBC 스페셜 ‘캥거루 케어, 엄마 품의 기적’에서는 캥거루 케어 관련 국내·외 사례와 함께 미숙아 치료 및 모아애착 관계 형성에 획기적인 패러다임을 제시할 캥거루 케어 도입 필요성에 대해 살펴본다.
미숙아 출산은 국경을 가리지 않지만, 캥거루 케어는 국내에서 아직 생소한 것이 현실. 신생아 집중 치료실(NICU) 내 인큐베이터에 격리된 미숙아를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생 최고의 기쁨을 누려야 할 출산 직후가, 아이러니하게도 산모의 죄책감이 점점 커져가는 시간이 된다.
생소한 이 영아케어법이 지난 6월, 서울대병원에서 최초로 도입됐다. 교정주수 32주 이상, 1kg 이상 아기들이 대상이다. 연출을 맡은 임남희 PD 역시 지난해 쌍둥이 출산 당시 인큐베이터에 잠시 아이를 맡긴 적이 있어 남다른 마음으로 이번 프로젝트 취재를 의뢰했다.
“처음 호주 기사를 보고 프로그램을 기획했지만 외국 사례 취재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서울대병원에 의뢰해 캥거루 케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죠.” 처음엔 머뭇거리던 산모들도 아기를 직접 가슴에 안고 심장박동을 느끼며 함께 호흡함으로써 비로소 모성을 체험했다. 엄마 품이 그리웠을 아기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제작진에 따르면 캥거루 케어에 참여한 아기들은 지난 두 달간 호흡, 맥박, 체온 등 바이탈 사인에서 많은 변화를 보였다. 엄마와의 피부 밀착을 통해 특수감각섬유가 자극을 받아 뇌에 쾌락 신호를 보내고 옥시토신 분비가 촉진돼 고통지각을 감소시키는 등 안정적이고 편안한 상태가 된다.
임 PD는 “국내 기록상 가장 작게 태어났던 아이는 370g이라더라. 그렇게 작은 생명도 살릴 정도로 기술이 발전한 만큼, 이제는 ‘잘’ 살리는 것이 화두”라고 소아병동 관계자의 설명과 함께 “타이밍이 잘 맞아 진행하게 됐고, 총 12명의 엄마가 참여했는데 다들 너무나 행복해하더라”고 전했다.
현재 국내 미숙아 출산율은 약 10%. 만혼 추세와 함께 노산 역시 늘어나면서 미숙아 출산율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캥거루 케어는 이와 같은 사회 변화에 따른 대안이며, 엄마와 아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는 게 임 PD의 설명이다.
임 PD는 “취재 과정에서 만나본 미숙아 엄마들의 경우에도 캥거루 케어에 대해 거의 모르고 계시더라. 아직 용어 자체가 생경할뿐 아니라, 필요한 부모가 많지만 아는 분은 많지 않은 듯 하다”며 “캥거루 케어는 미숙아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모든 엄마와 아이들이 누려야 할 케어임에도 아직까지 사회적 공감대가 크게 형성되진 않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임 PD는 “다행히 캥거루 케어의 현실화 가능성을 낙관적으로 볼 수 있는 건, 일단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편안한 의자와 프라이버시를 위한 파티션 정도만 있으면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산후 관리에 대한 인식 환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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