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국제회의실에서 진행된 KBS 2TV 월화드라마 ‘스파이명월’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고영탁 KBS 드라마국장, 이강현 정성효 CP는 이른바 ‘한예슬 사태’에 대한 방송사 공식 입장을 전했다.
이날 관계자들은 쪽대본에 살인적 스케줄을 주장한 한예슬에 대해 “다른 드라마와 비교했을 때 살인적인 수준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이강현 CP는 “‘스파이명월’은 KBS 미니시리즈 극본 공모 당선작으로, 첫 주차 작가 교체 이후 모든 씬이 제본 형태로 나왔다. 쪽대본이 아니었을뿐더러 제작 시간도 다른 미니시리즈와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쪽대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 촬영현장 대기 시간이 길어진 이유는 한예슬 탓이었다는 게 방송사 측 입장이다. 이 CP는 “1회차 방송 후 4일째부터 무단이탈, 촬영거부, 수정요구가 잦아졌다. 이를 수용하거나 조정하느라 대기 시간이 길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준비 소홀이나 연출 미비로 인한 지연은 한 건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성효 CP는 “한예슬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촬영 일정을 줄여달라고 요구했다. 요즘 드라마의 경우, 비 주인공들도 5일 이상 촬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주인공의 주5일 요구를 들어주기란 물리적으로 쉽지 않았다. 또 몸개그 같은 연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수정을 해주거나, 특정 배우와 연기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배려해줬다. 부당한 요구라도 배려하고 끝까지 끌고 가려 했던 것이 우리 입장이다”고 말했다.
끊임없는 제작진의 회유와 배려에도 불구하고 한예슬은 14일 촬영장을 무단이탈한 뒤 끝내 현장에 복귀하지 않았다는 것이 방송사 주장이다. 결국 한예슬은 이튿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가족이 있는 LA로 떠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이 같은 파국으로 치닫게 된 데 대해 이 CP는 한예슬 개인 성격의 문제와 저조한 드라마 성적을 이유로 추측했다. 이 CP는 “주변 어느 누구의 통제로부터도 자유롭고 싶어하는 한예슬의 성격적인 측면도 영향이 없지 않았으리라 본다”고 캐릭터 측면의 이유를 들었다.
이어 “또 첫 주 방송 결과가 나온 뒤, 자신의 만족도나 기대치가 충족되지 않았다는 걸 파악한 이후부터 직접적으로 제작 현장에서 사전 통고 없는 촬영장 이탈, 주5일 촬영 요구, 몇 시간만 촬영에 임하는 태도를 보여 왔기 때문에 이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그렇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CP는 또 “제작사 대표의 핸드폰을 통해 한예슬과 지난 13일 직접 통화를 했다. 당시 한예슬은 연출자와 스태프와 자신을 왕따시키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더라. 하지만 세상에 어떤 연출자가 주인공을 왕따 시키겠는가. 오전 7시부터 전 스태프 및 배우들이 스탠바이 하고 있던 상황에 오후 4시에 배우가 도착하니 웃으며 맞이할 상황은 아니지 않겠는가. 이겨 나가보자고 다독였으나 결국 여러 연기자, 스태프 앞에서 내일(14일)부터 촬영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더라”고 씁쓸해했다.
한편 이와 관련해 KBS는 유감의 뜻과 함께 여주인공 교체, 대체 캐스팅 입장을 밝혔다. 이 CP는 “드라마 콘셉트상 여주인공이 중심 인물인데, 어떤 상황이라도 여주인공이 사라져 버리면 작품을 완성도 있게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배우를 바꿔서라도 의도했던 방향 그대로 가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작사 이김프로덕션은 보다 강경한 입장이다. 제작사는 “현장에서 한예슬이 본인 위주로 대본 수정을 요청하고 스케줄 변경을 요구하거나 촬영장에 지각하는 경우에도 최대한 한예슬의 입장을 배려해 다독이며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를 통해 현장 촬영이 원만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왔음에도 불구, 한예슬은 드라마가 방영되는 중임에도 촬영을 거부하고 일방적으로 잠적함으로써 정상적인 드라마 촬영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제작사는 유, 무형적으로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됐다”며 법적 대응 의지를 시사했다.
제작사와 함께 소속사 싸이더스 역시 드라마 뿐 아니라 그간 진행해 온 영화, CF 등 다수의 활동에 걸린 이미지 실추 문제까지 포함, 100억대 이상 규모의 손해배상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는 열악한 드라마 제작 환경이 큰 몫을 했지만 한예슬의 독단적인 행동이 결정적이었다. 드라마 주인공으로서 시청자와의 약속을 저버린 데 대한 책임론이 동정론보다 거센 상태로 향후 한예슬의 연예계 활동에 적신호가 켜졌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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