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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공포는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눈을 감고 잠깐의 체험을 해본다고 해서 시각장애인들의 불편함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볼 수 없는 이들은 소외되는 일이 많지요. 약자가 되는 일도 많습니다. 일반인은 그들이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뒤에 서있어야만 한다는 편견을 가집니다. 그런데, 영화 ‘블라인드’는 사고로 시력을 잃은 수아(김하늘)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수아는 범죄현장의 목격자가 돼 경찰과 함께 범죄자를 쫓지요. 일반인들의 편견은 산산조각 나고 맙니다.
소재는 물론 상황, 그리고 수아와 연쇄살인마라는 인물의 대립 구도를 이렇게도 섬세하고 김장감 넘치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할 정도입니다. 일단 모든 걸 떠나서 영화 ‘추격자’를 봤다면 구미가 당길 만한 영화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끼는 동생과 자신의 시력을 잃은 트라우마를 점차 이겨내고 있는 수아는 어느 비오는 날, 보육원에 들렀다가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타려하지만 쉽게 잡히지 않지요. 시간이 흐른 뒤, 그녀 앞에 차 한대가 멈추더니 친절히 말을 건네며 타라고 얘기를 합니다.
지나친 친절에 의심하는 수아와 운전수 명식(양영조)은 실랑이를 벌이고, 앞을 주시하지 못한 명식 탓에 차는 사람과 부딪히지요. 명식은 치인 사람을 트렁크에 싣고 수아에게 동물일 뿐 별 것 아니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하지만 경찰대 출신인 수아는 명식을 가격하고, 명식은 뒤에서 다가오는 차를 피해 달아납니다. 명식은 수아의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을 들고 있고, 두 사람은 쫓고 쫓기는 관계를 시작하지요.
수아가 청각이나 후각으로 무언가를 감지할 때 이를 영상으로 담아낸 표현이 적설하고 절묘합니다. 수아와 동일하게 긴장하고 위태로움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리얼함도 전해집니다.
극을 짜임새 있고 재밌게 만들기 위해 수아의 조력자로 또 다른 목격자 기섭(유승호)과 형사(조희봉)를 추가한 점은 담백한 인물 관계도를 구성해 보는 맛을 더하지요. 특히 기섭이 목격한 것과 맹인인 수아가 체감한 것이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더 몰입하게 만드는 효과를 톡톡히 냅니다.
치약을 손가락에 짜서 다시 칫솔에 묻혀 이를 닦고, 계단을 난간에 의지해 오르내리는 모습 등 매 장면도 치밀하고 세심합니다. 상대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은 채 다른 곳을 보며 이야기하는 김하늘의 눈빛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감탄하게 만들지요.
‘로맨틱 코미디에 주로 출연한 여배우가 스릴러에서 먹힐까’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배우가 작품을 선택한다고 하나, 김하늘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이 작품은 ‘그녀 아니면 안 돼’라고 할 정도로 아주 잘 맞는 ‘옷’입니다.
김하늘은 멜로와 공포, 액션, 코미디에 두루 출연하며 쌓은 내공을 한꺼번에 쏟아낸 것 같습니다. 필모그래피의 다양성이 부족한 배우는 아니지만 그의 작품집에 자랑스럽게 한 편을 더 추가해도 될 영화 같습니다.
‘어둠 속의 대화’ 체험을 마치고 저를 인도해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됐을 때 깜짝 놀랐지요. 일종의 반전이랄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이 주최한 ‘2009 힛 바이 피치’(Hit By Pitch)에서 최고 인기 프로젝트상을 수상한 영화입니다. 10일 개봉.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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