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의 화려함을 부정하기보다는, 그 화려함을 어떻게 입느냐가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바야흐로 아나운서도 ‘스타’ 시대다. 방송가 대세로 떠오른 전현무 KBS 아나운서를 비롯해 각 지상파 방송사를 대표하는 얼굴은 대체로 아나운서의 몫이 되곤 한다. 하지만 “스타 아나운서 시대라지만 스타가 되고 싶진 않다”고 당차게 말하는 아나운서가 있다. 종합편성채널 개국을 앞둔 MBN 박영식 앵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물론 MBN에도 그런 존재가 필요하다 생각해요. 하지만 제 꿈은 평범한 아나운서면서도 비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겁니다.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그런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어쩌면 더 높은 비상을. 더 큰 꿈을 꾸고 있는 이 남자. 범상치 않다.
“리더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스스로 공부는 많이 하고 있어요. 종편 후엔 아무래도 더 다양한 분야의 방송을 하게 될 테니까요. 마네킹에게 어떤 옷을 입혀도 예쁜 것처럼 어떤 장르의 방송을 갖다놔도 잘 소화할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 앵커는 현재 MBN 새벽 뉴스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다. 어느새 8개월째. 그야말로 ‘아침을 여는 남자’다. “아침 뉴스 시청률이 은근히 좋다”고 프로그램 PR을 하면서도 “아침형 인간이 된다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더라”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아침 프로그램 진행은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없는 힘든 일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지요. MBN에 둥지를 튼 지 얼마 안 됐으니 이 자리에 충실하자는 마음으로 본분을 다 하고 있습니다.”
동이 트기도 훨씬 전인 깜깜한 새벽, 환경미화원 분들이 청소하시는 모습을 보며 출근한다는 박 앵커는 “나태해지려다가도 그 분들을 보면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스스로를 다잡곤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매일 아침 5시부터 8시까지 뉴스를 진행한 뒤 ‘시청해주신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는 인사로 프로그램을 맺는다. “몇몇 분들은 뭐가 그렇게 대단히 감사하냐고 웃기도 하시는데, 전 그래요. (MBN 입사 전)척박한 환경에서도 방송을 해 본 사람으로서 보잘 것 없는 제 방송을 봐주신다는 자체가 감사한 일이죠.”
가끔은 ‘얼굴이 왜 그러냐’는 컴플레인도 들어온다며 난감한 웃음을 짓는다. 발음이나 자세는 고칠 수 있어도 얼굴을 획기적으로 고칠 수는 없지 않은가. 요즘 아나운서가 외적으로 특히 주목받는, 준 연예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하지만 박 앵커는 아나운서의 화려함에 대한 시선에 분명히 선을 그었다. “실제로 저는 화려하지도, 화려해지는 걸 원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작은 TV 화면 안에 내 얼굴이 나온다는 건 일반인은 경험하기 힘든 꿈이지만, 화려함에 대한 선망으로 시작한다면 기대만큼 실망도 클 것이라는 제언이다.
또 그는 ‘화려함’의 달콤한 맛에 취해 초심을 잃게 되는 일부 케이스를 경고했다. “영화 ‘부당거래’에 이런 대사가 나오죠.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방송 일을 한다는 이유로 주위에서 호의를 베풀어주시면, 그걸 권리로 알고 건방져지는 경우도 종종 보이더라고요. 화려함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그 화려함을 어떻게 입느냐가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학창시절, 박 앵커는 수의사를 꿈꾸며 농대 자원경제학과에 진학했지만 결정적으로 동물 해부를 차마 못 하는 자신을 발견한 그는 눈물을 머금고 꿈을 접었다. 대학시절 처음으로 가출을 감행하는 등 평범한 대학시절을 보낸 박 앵커는 축제 진행 등의 경력을 쌓으며 자연스럽게 방송 분야 일을 업으로 택하게 됐다.
아직 군기 바짝 들어간 이등병 신분(?)이지만 스스로 경쟁력 있는 시청 연령대는 분명히 찾았단다. “아줌마층이 제일 경쟁력 있는 것 같아요. 지방 아나운서로 근무할 땐 그 지역 아주머니 분들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았죠(웃음). 제 비주얼이 요새 먹히는 얼굴은 아니라 아무래도 소녀 팬을 타깃으로 하긴 어려울 것 같고, 저만의 강점을 살려 어르신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려 하고 있죠.”
박 앵커의 분장실 내 별명은 ‘박 아줌마’다. 본능적으로 수다가 나온단다. 한 시간 남짓 그와의 대화에서 인상적인 점은, 뉴스 진행자가 주는 딱딱한 이미지와 다른, 옆집 남동생 같은 편안함이다. “제 성격이 예능이라 인생이나 삶도 예능처럼 살고 싶은데, 정형화된 뉴스를 주로 진행하다 보니 딱딱해지는 것 같기도 해요.” 그는 지금, 스스로의 벽을 깨부수는 시간을 원하고 있다.
“늘 곁에 있어 이미 친숙해진 방송인을 보면 그리 반갑진 않지만, 어느 순간 홀연 그가 사라지면 허전한 느낌이 드는 기분이랄까요? 요즘 세태가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게 되는 것 같은데, 저 역시 그런 평범하고 편안하면서도 비범한, 사람들이 그리워할 수 있는 방송인이 되고 싶어요.”
끝으로 박 앵커는 세상의 상식을 전하는 아나운서가 되기를 소망했다. “뉴스를 하다 보니 상식을 지키는 게 어려운, 상식적인 일이 오히려 드문 세상인 것 같아요. 편견을 배제하고 이야기해야 하는 자리에 있지만, 상식선을 벗어나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시청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송을 하고자 합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팽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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