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도 많던 MBC 드라마 ‘미스 리플리’가 종영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학력 위조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등 숱한 화제 속에 방송된 ‘미스 리플리’는 드라마틱한 전개를 끝으로 동시간대 1위로 마무리됐다.
여주인공 장미리로 분해 5개월간 ‘미스 리플리’와의 여정을 함께 한 이다해로서는 미련도, 아쉬움도 큰 모양이었다.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이다해는 “이제야 겨우 숨 돌릴 틈이 생겼다”면서도 “욕심이 컸던 것 같다”고 허심탄회하게 소회를 전했다.
◆“‘미스 리플리’ 마지막 회, 결국 끝까지 못 봤어요.”
“간밤에 엄청 먹고 잠도 많이 잤더니 얼굴이 퉁퉁 부었지 뭐에요.” (이다해씨, 장미리도 아니면서 그렇게 만나자마자 거짓말 하기에요?) 드라마 종영 후 소소한 근황을 전한 이다해는 “마지막회는 끝까지 다 못 봤다. 못 보겠더라”고 털어놨다.
“솔직히 미리가 감옥에 갈 줄은 저도 몰랐어요. 차라리 죽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했죠.” ‘미스 리플리’는 동시간대 시청률 1위로 마감하긴 했지만, 뒷맛이 개운하지만은 않았다. 탄탄했던 초반 전개는 중반부로 넘어간 뒤 흔들리기 시작했고, 뒤바뀐 주·조연 캐릭터 비중 논란부터 반전이라 할 수 없는 황당 결말로 질타를 받기도 했다.
“처음엔 시놉시스와 대본이 흥미로워 참여하게 됐는데, 끝나고 나니 아쉬움이 커요. 예상을 벗어난 전개도 그렇지만, ‘추노’ 때와는 달리 제 욕심이 컸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욕심이 컸던 만큼 아쉬움도 크고, 스스로에게 실망감도 크고요.”
드라마가 종영한 지 어느새 2주 가까이 돼 가지만 아직까지 이다해는 장미리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나진 못했다. “마지막 촬영 후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를 하고 나오면서 너무나 홀가분했는데, 생각만큼 빠져나오기 쉽지 않더라고요. 장미리라는 애, 생각보다 많이 세던데요 하하.”
◆“나조차 이해하기 힘들었던 장미리, 시청자들에 이해시키기 위해선…”
데뷔 초 경쾌하고 발랄한 이미지가 강했던 이다해는 ‘에덴의 동쪽’부터 ‘추노’에 이어 ‘미스 리플리’까지 농도 짙은 감정 연기자로 변신했다. 그 중에서도 ‘미스 리플리’는 절정이었다. 불우한 유년기를 거친 뒤 세상을 속이고 승승장구하다 진실이 밝혀지자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롤러코스터 같은 인물을 연기한다는 건,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문제는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미리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어도 저는 해내야 했으니까요. 저 조차 이해를 못한 채 촬영을 하면 시청자들에겐 분명히 보이겠죠. 때로는 미리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런 그녀를 이해하려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장미리로 사는 동안, 그녀 역시 불안했다. “미리가 불안해하면 실제로 제 심장이 쿵쾅거렸고, 정신적으로 쉽지 않았어요. 원래 컷 하고 나면 금세 풀어지는 편이었는데, 이번엔 좀처럼 그러질 못했거든요. 옆에서 혜정언니가 ‘얘 왜이래. 이거 찍고 그만 찍을 거야’ 이러면서 흔들어 주기도 하고…”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살인적인 촬영 스케줄이었다. 촬영 중간 링거도 맞고, 보양식도 챙겨먹으며 촬영에 임했지만 하루 두 시간도 제대로 못 자는 쪽잠 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막바지엔 거의 초인적인 힘으로 버텨냈다. 여느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이다해 역시 생방송을 방불케 하는 드라마 제작 환경에 대한 개선 필요성에 목소리를 높였다.
◆“최명길 선생님, 사실 너무 아팠답니다 흑흑.”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약혼자 송유현(박유천 분)의 어머니인 김이화(최명길 분)로부터 거침없이 내동댕이쳐지는 장면, 그리고 그가 친모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이었다. “최명길 선배님의 연기는, 와 정말 대단했어요. 베테랑 선생님인데도 현장에서 감정의 끈을 놓지 않으시고 너무나 몰입하시더라고요. 오열 장면에선 저절로 리액션이 나왔죠. 수도꼭지 틀어놓은 듯 눈물을 줄줄 흘렸던 기억이 나네요.”
최명길의 몰입도는 시청자도, 상대배우 이다해도 놀라게 할 정도의 따귀 씬에서도 드러났다. “솔직히 맞고 나서 헉 했어요. 순간 핑 돌았지만, NG 내면 안 되니까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했죠.” 최명길의 매서운 손맛이 지나간 이다해의 볼은 순간 새빨개졌고, 생생한 현장 분위기는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전달됐다. 뒤늦게나마 “솔직히 엄청 아팠다”고 울상을 짓는다.
‘미스 리플리’와의 작별을 고한 이다해는 밝은 캐릭터로 돌아오고 싶은 소망을 밝혔다. “‘마이걸’ 주유린처럼 경쾌하고 명랑한 캐릭터를 하고 싶어요. 밝은 캐릭터를 한 지 너무 오래 됐거든요.”
최근 2년 새 정극 배우로 자리 잡기 시작한 만큼, 그녀의 변신에 우려를 드러내는 지인도 적지 않단다. 하지만 이다해는 “이제는 여러 가지 장르의 작품을 많이 해 본 만큼 즐겁게 연기하고 싶다”며 해맑게 웃었다. ‘연기력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그녀는 한결 편안해 보였다.
◆“김정태 오빠와 술 마시면 누가 이길지…”
단아한 인상에 고운 선, 길고 하얀 팔다리. 굳이 하나하나 꼬집지 않더라도 이다해의 외모는 그야말로 여성스러움의 극치다. 이쯤 되니 성격은 어떨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털털함의 극치다.
“장미리와는 거리가 먼 성격이죠. 평소엔 주유린과 비슷한 편이에요.” 의외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상을 뛰어넘는 털털한 성격에 수다쟁이더라. 거기다 매니지먼트 스태프들 모두 오랫동안 함께 하는 의리파다. 물론 그들 역시 이다해에겐 든든한 버팀목이다.
주량도 만만치 않은 듯 보인다. 술자리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있는 스타일임을 고백하는 무서운 여자 이다해. 드라마 ‘불한당’에 이어 ‘미스 리플리’에서도 호흡을 맞춘 절친 선배, 김정태와 마시면 누가 이기느냐 묻자 “정태오빠랑 작정하고 마셔본 적은 없는데”라며 빙그레 웃기만 한다.
마론인형도 울고 갈 몸매의 소유자이면서도 이다해는 은근히 밥만 잘 먹더라. ‘다이어트 식단’대로 살인적인 식이요법을 감행하는 뭇 연예인들과 달리, 이다해는 소문난 맛집을 찾아다니는 미식가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생적으로 살찌는 방법을 모르는(!) 이기적인 유전자의 소유자다.
◆“논란에 악플… 솔직히 많이 힘들었죠.”
이다해는 연기자임에도 유독 연기보다 외적인 부분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는다. 연기를 못 하는 것도 아닌데, 이다해는 유독 논란이 많았다. 참 이상하다. 이유가 뭘까. 예뻐서 혹은 부러워서? 이렇다 할 해명을 안 해서 아니면… 그냥?
“힘들었죠. 사실이 아닌 일이 마치 진짜인양 퍼져나갈 땐 억울하기도 하고…” 혹자는 무플보단 악플이 낫다고도 말하지만,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간 있었던 논란들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도 “이제는 댓글을 보지 않게 된다”고 씁쓸하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에선 남모를 아픔이 묻어난다.
그런 이다해에게 동료 연기자들 그리고 팬들은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이다. 특히 팬들은 말 할 나위 없이 고마운 존재다. “정말 팬 분들은, 어휴. 제가 정말 잘 해야죠. 비록 시청률이 저조하더라도 어딘가에서 다들 봐주고 응원해주시더라고요. 그걸 느낄수록 점점 책임감이 더 커진답니다.”
‘미스 리플리’ 후 이다해는 달라졌다. 무의미한 욕심을 버리게 됐다는 그녀. 연기에 대한 생각은 한결 여유로워진 듯 하지만 작품에 대한 책임감은 더 커졌다. 특별히 무언가를 준비한다기보다, 살면서 겪는 모든 일이 연습이고 도전이라고 말하는 이다해가 보여줄 또 다른 그녀의 모습은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MBC, 이다해 김정태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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