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 첫날, ’DJ DOC는 로커였어’
서울을 비롯해 중부지역에 주중 내내 폭우가 쏟아졌지만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이 열린 7월 29일은 거짓말처럼 화창했다. 며칠동안 비를 잔뜩 머금은 빅탑 스테이지(메인 스테이지) 잔디도 오랜만에 햇살에 윤기가 넘쳤다. 정오가 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려들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고 가볍게, 하지만 멋스럽게 꾸민 페스티벌 마니아들 역시 선두에 섰다.
오후 2시 첫 번째 메인스테이지 무대는 문샤이너스가 끊었다. 이어 일본밴드 큐미리(9mm prarabellum bullet)와 쿠루리(Quruli), 더 뮤직(The Music)이 무대를 이었다.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것은 DJ DOC다. 세렝게티와 함께 라이브셋으로 꾸며진 이날 DJ DOC의 무대는 이곳이 록 밴드가 오르는 무대라는 편견은 첫날부터 말끔히 날리기 충분했다. 특히 이날 DJ DOC는 무대 위에서 과감한 하의 탈의(?) 퍼포먼스로 관객들을 열광시키기 까지 했다. 이런 ’록 스피릿’이 충만한 팀이 또 있을까.
첫 날 헤드라이너는 세계최고의 일렉트로닉 뮤지션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 였다. 압도적인 사운드로 숨 돌릴 틈 없이 휘몰아치는 일렉트로닉 음악은 첫 날부터 관객들을 ’미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거대한 설치 예술에 가까운 무대와 환상적인 레이저쇼 역시 볼만했지만 케미컬 브라더스 음악에 흠뻑 취해 있던 약 3만여명의 관객들이 이를 볼 정신이 있었을지 의문이다.
서브 스테이지인 그린스테이지 에서는 일본 이모코어 밴드 엔비(Envy)와 아폴로18, 크래쉬, 그리고 아타리 틴에이지 라이엇(Atari teenage riot)이 최근 유난히 말랑해진 록 음악 분위기에 폭탄 같은 에너지를 뿜어내며 광란의 도가니를 만들고 있었다.
7월 30일 둘째날 ’보고있나? 악틱몽키즈’
늦은 아침부터 관객들이 하나둘씩 공연장 주변에서 자리를 깔고 앉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첫 무대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책을 보거나 헤드폰을 쓰고 자신이 가져온 음악을 듣거나 망연히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는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 주변에는 10~20여명 내외의 사람들이 ’라인업에 아쉽게도 빠진 스페셜 공연’을 즐겼다. 수십년 페스티벌 속에서만 살았던 사람들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옐로우 몬스터즈가 포문을 연 둘째 날의 빅 탑 스테이지의 분위기는 피아에서 이미 절정에 치달았다. 특히 이 두 국내 팀의 무대는 우리 밴드들이 이제는 음악적으로나 연주력, 공연 자체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밴드들과 견줘 결코 뒤지지 않음을, 어떤 부분에서는 한 두 발자국쯤 앞서 있음을 증명했다.
이 같은 국내 밴드들의 자존심에 자우림이 깃발을 꽂았다. 나이가 들수록 어려지며 ’여신미모’를 발산하고 있는 보컬 김윤아를 비롯한 자우림 멤버들은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완급을 조절하는 무대 구성으로 데뷔 후 15년간 이들이 정상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를 다시한번 증명했다.
마지막 무대는 악틱 몽키스(Acrtic monkeys)가 올랐다. 이들은 2005년에 데뷔한 비교적 젊은 밴드답게 둘째 날 공연 중 가장 다이나믹한 무대를 선보였다. 기타리스트 제이미 쿡(Jamie Cook)은 무대에 드러눕기도 하고 보컬 알렉스 터너는 우리말로 "안녕하세요" "재미있어요"라는 말로 국내 팬들에게 인사를 하기도 했다.
7월 31일 셋째날 ’음악과 비 땀에 흠뻑 젖어’
낮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는 오후가 되자 굵어지기 시작했다. 우비와 장화, 슬리퍼를 챙겨온 대다수의 사람들은 비오는 페스티벌 현장에서 만끽했고 미처 이를 준비하지 못한 관객들은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쏟아지는 빗속에 운동화를 찌걱거리며 돌아다녔다. 어차피 공연 때 한참 뛰면 비에 젖나 땀에 젖나 마찬가지라는 심사.첫 날 빅탑 스테이지는 스카펑크 스페셜이었다. 국내 대표적인 스카펑크 밴드 카피머신과 넘버원코리안이 결성한 프로젝트 밴드 스카워즈에 이어 킹스턴 루디스카까지 연달아 무대에 오른 것. 마냥 흥겨운 레게리듬과 스카음악이 빗속에서 관객들의 어께를 들썩이게 했다.
이어진 국카스텐, 지미 잇 월드(Jimmy eat world) 장기하와 얼굴들의 무대는 비가 와서 더욱 흥분이 넘쳤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처럼 ’하늘에 정수리를 쿵 찍는’ 기분은 비 속에서 펼쳐지는 공연에서 제대로 만끽 할 수 있었다.
간간히 쏟아지는 기습적인 폭우는 인큐버스와 스웨이드의 무대에서 슬며시 잦아들었다. ’폭우도 날려버릴 기세’는 무대에 오른 이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3~4만명의 관객들의 작품이었다. 잔디 곳곳에 생긴 물웅덩이에서는 흙탕물을 튕기며 뛰는 천진난만한 관객이 눈에 띄었다.
비 덕분에 반사이익(?)을 본 것은 서브스테이지인 그린스테이 뮤지션들이었다. 돔 형태의 천장이 있는 무대인 덕에 비에 지친 관객들이 대거 몰린 것. 물론 라인업 자체도 화려했다. 지산에서 로커 데뷔 신고식을 치른 정진운과 마니아 층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몽니, 최근 폭발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10cm, 그리고 한국 모던록의 전설 델리스파이스 등이 비에 지친 관객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한편 올해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에는 7월 29일부터 31일까지 총 74개 팀이 출연, 3일간 누적 9만 2천 명의 관객들과 함께 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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