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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25일부터 1953년 7월27일까지 37개월 동안 같은 민족끼리 싸우며 사망자는 400만 명에 달한다. 현대 젊은이들에게는 잘 알지 못하는 과거로만 치부될 수 있지만, 분명히 이 땅에서 벌어진 비극적 상황이다. 또 잊어서는 안 되는 전쟁이다.
‘고지전’은 이 비극의 이야기를 지금까지의 전쟁 영화들과는 다른 지점에서 바라본다. 휴전 논의가 막바지에 이르던 1953년 2월부터 휴전일인 7월27일까지, 전쟁이 끝나는 시점을 강조했다. 장소는 뺏고 빼앗기를 하루에도 수차례 반복하는 동부전선 최전방 ‘애록고지’다.
방첩대 중위 강은표(신하균)는 ‘애록고지’에서 발생한 중대장 의문사 사건과 남북 부대간 내통의 증거를 조사하기 위해 현장에 파견된다. 은표는 이곳에서 죽은 줄만 알았던 친구 김수혁(고수)을 만난다. 유약하기만 했던 수혁은 2년 만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악어중대’의 실질적 리더가 돼 있다.
영화는 감독의 말처럼 실제 전쟁터에 들어선 것 같은 생생함을 전해준다. 격렬한 폭격 및 총격 신, 군인들이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비탈진 구릉을 오르는 신 등은 현장감이 넘친다. 물론 전쟁을 소재로 했으나 전쟁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내포해 극의 재미를 배가하려 했다. 아울러 인물간 갈등과 감정 대립도 빠질 수 없다.
중대장이 스물을 갓 넘긴 앳된 인물인 이유, 수혁이가 그토록 변해버린 이유, 왜 의문사한 지휘자의 머리에 아군의 총알이 박혀있는지, 인민군과 교류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등 궁금증은 많아진다. 은표는 ‘관찰자’로서 이런 물음을 안고 관객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악어중대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과 비밀을 이해하지 못하는 은표는 대원들과 대립하고 갈등한다. 은표는 ‘악어중대 나라’의 정치에 참견하려 하려 한다. 수혁과 감정적 대립은 최고조에 이른다. 결국 그는 중대 틈으로 끼어든 것 같지만 쉽게 동화될 수 없다. 은표는 끝까지 혼란에 빠진 인물이다.
신하균과 고수는 어느 순간에는 과하다가 어느 지점에서는 폭삭 주저앉고 만다.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 표현을 전달하려 했으나 이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 죽고 죽이는 전쟁의 한복판, 미치기 일보 직전의 상황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이상 쉽게 전달되는 게 더 이상할 수도 있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악어중대는 죽어가는 동료를 놔두고 아무렇지 않게 이동한다. 나름의 방식으로 전쟁 속에서 삶을 지탱해 온 이들의 모습이다. 그들에게서 감정을 읽어내는 게 어려울 수 있지만 다른 영화들 보다 더 현실적이고 자연스럽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쓴 박상연 작가가 장훈 감독과 의기투합해 새로운 전쟁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기대가 컸다. 진실을 알게 됐을 때 관객의 허를 찌른 11년 전 영화는 흥미진진하면서도 슬펐다. 하지만 ‘고지전’은 다른 장르의 영화다. 허를 찌르지 않는다. 아기자기한 유머 코드도 없어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악어중대의 지루한 전쟁은 영화를 무겁게 만들 수밖에 없다. 감독의 전작인 ‘영화는 영화다’, ‘의형제’처럼 상황과 갈등 요소를 특기할 만하다. 그렇지만 가뜩이나 가볍지 않은 주제, 무겁게 느껴지는 설정은 전쟁영화를 싫어하는 이들에게 거리감을 갖게 만들 수 있다.
분명 볼거리는 있다. 새로운 시도도 박수를 쳐줘야 한다. 악어중대장 신일영을 연기한 배우 이제훈을 눈에 띄게 만든 것도 성과일 듯하다. 차곡차곡 많은 것을 섬세하게 담아내려한 의도와 열정도 파악할 수 있다.
결론만 보자면 남은 것은 없다는 것을 너무 열심히 보여준 영화가 아닐까. 악어중대는 이유도 모른 채 살기위해 같은 민족에게 총칼을 겨누어야 했다. 영화는 좋게 말하면 반전의식을 심어줬고, 나쁘게 말하면 빤한 영화가 됐다.
이미 결론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싸웠는가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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