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최고의 사랑’으로 지난 봄부터 방영된 다수의 로맨틱 코미디를 ‘올 킬’ 시킨 그에게선 ‘독고진’과 ‘차승원’의 아우라가 섞인 카리스마가 느껴졌지만, 한층 여유 있는 미소가 돋보였다.
‘최고의 사랑’으로 많은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줬지만 정작 차승원은 전장을 방불케 하는 현장의 기운이 여전히 떠오르는지 “아직은 좀 쉬어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내 지난 3개월간 울고 웃었던 ‘독고진 스토리’를 하나하나 꺼내놓는 그.
인터뷰 당일 새벽 디시인사이드 차승원갤러리에 남긴 글이 경고성 소동을 불러온 데 대해 먼저 얘기를 꺼낸 차승원은 “팬들에 대한 감사 의미를 담아 장난스럽게 남긴 글이지 절대 경고성이 아니다. 최대한 애정을 담아 쓴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승원은 “‘시티홀’ 때도 그랬지만 이번 드라마를 마치고 보니 역시 로맨스를 찍으니 폭발적이구나 싶었다. 뒤늦은 나이에 너무나 출중한 두 작가(김은숙, 홍자매 작가)를 만나 너무나 행복한 일들의 연속이다. 캐릭터를 잘 잡아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고 작가들에게 공을 돌렸다.
하지만 ‘최고의 사랑’에 몸을 실은 차승원의 내공이 가미되자, 독고진은 괴팍하고 괴상한 인물에서 전 국민의 호감으로 재탄생했다. “처음엔 나도 걱정했다. 괴상했을 뿐, 멋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식적이고 비열한데다 괴팍하기까지 하고… 걱정이 됐지만, 대본을 보면서 믿음이 있었다. ‘내가 널 위해 다 해주겠어’가 아닌, ‘나 너무 하기 싫은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해 준거야’는 식의 장치. 그런 게 너무 좋아서 이 정도면 미움 받지 않고 귀엽게 보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홍자매 작가 역시 차승원의 연기에 대해 ‘말투 등의 개성은 차승원씨가 독고스럽게 잡은 거였는데, 첫 방송 후 만족스럽게 잘 봤다. 우리가 생각했던 독고보다 더 멋있게 나와 좋았다’고 호평했다.)
차승원은 ‘최고의 사랑’을 통해 근 10년간 트레이드마크처럼 길러온 수염을 밀어 화제를 모았다. “작가님들이 어느 날 ‘수염을 자르면 안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더라. 구애정에 대한 독고진의 감정이 고조되는 시점이었는데, 얘기를 듣고 보니 이건 잘라야겠더라 싶더라. 근 10년 만에 자른 것이다. 사우나에서 수염을 미는데 왠지 벌거벗은 기분이더라(웃음).”
문제의(?) ‘소’자 수염 에피소드는 실제 차승원의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로맨틱 코미디란 어른들의 동화 아닌가. 애들은 되게 투명하고, 솔직하고 공정한 데, 가식적인 어른들 앞에 아이가 딱 뭔가 한 마디를 하는데서 로맨틱 코미디의 장점이 부각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동안 누구도 내게 ‘수염을 왜 기르세요?’라고 물어보지 않았다. 늘 기른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애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 갔는데 한 아이가 ‘아저씨 수염이 ‘소’ 자다’라고 하더라. 그걸 꼭 한 번 써먹어야겠다 생각하고 홍작가에게 얘기했는데, 드라마 속에서 절묘하게 들어가게 된 거다.”
‘수염을 다시 기를 생각인지’ 묻는 홍자매의 궁금증을 전하자 차승원은 “최근 CF 촬영 중 수염이 꼭 있어야 하기에 인조 수염을 붙이고 찍었는데 수염 퀄리티가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다. 굳이 기를 필요가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로맨틱 코미디 여왕’ 김선아와 ‘시티홀’에서, 그리고 공효진과 ‘최고의 사랑’에서 각각 호흡을 맞춘 차승원은 공효진에 대한 느낌도 전했다. “두 배우의 공통점은, 대사를 잘 까먹는다는 것이다. 나는 대본을 통째로 외워야 연기가 되는 스타일인데, 그들은 완벽하게 대사를 습득하지 않는, 나와 다른 스타일의 배우다. 그런데 둘의 공통점은 감정을 담는 부분이 정말 탁월하다는 것이다. 긴 대사임에도 감정을 담아 연기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사람들이 괜히 좋아하는 게, 괜히 연기 잘 한다고 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연기에 임하는 자세가 좀 다른 배우들이다.”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 어느덧 경력 20년이 훌쩍 넘어간 배우 차승원이 ‘연기 잘 하는 배우’라는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멜로면 멜로, 스릴러면 스릴러, 사극이면 사극 거기다 코미디까지. 모든 장르를 섭렵했고, 흥행과 별개로 뭘 해도 연기자로서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차승원은 “경험이 많이 쌓여서, 사람들이 나의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고, 어느 정도가 받아들여지는지 아닌지를 아는 것 같다. 이번 드라마 역시 그간의 모든 것들이 응축돼 받아들여진 것 같고, 나 역시 내가 생각하는 나만이 아닌, 대중이 바라보는 차승원의 이미지를 무시하지 말고 가자는 생각이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최고의 인기와 사랑을 준 ‘독고진’이지만, 차승원은 이를 ‘덫’이라고 표현했다.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줬지만 어떻게 보면 덫이다. 다음에 어떤 걸 해도 독고진을 떠올릴테니까. 배우가 작품을 통해 히트하는 캐릭터를 만나서 이를 뚫고 가기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어느덧 불혹을 넘긴 차승원은 “오히려 지금이, 배우로서는 훨씬 더 다양한 것을 해볼 수 있는 것 같다. 30대에 대중이 바라봤던 차승원의 이미지가 40대가 된 뒤 바뀐 것도 좋고, 또 지금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 등 여러모로 좋다”며 40대 예찬론을 펼쳤다. 이어 “다음 작품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새로운 시도를, 다른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게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고 다짐했다.
도전과 연기를 좋아하는 배우 차승원. 머무르지 않고 진화하는 그의 연기를 오래오래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psyon@mk.co.kr/사진=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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