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로 대표되는 한국 대중문화인 K팝(K-POP)의 파리 입성은 '세계문화의 수도'에 한류의 깃발을 꽂았다는 뿌듯한 성취감과 함께 큰 숙제도 남겼다. 어떻게 하면 이 열기를 유럽 전역으로 전파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10ㆍ11일 이틀간 'SM타운 라이브' 파리 공연을 찾은 관객은 1만4000여 명. 프랑스는 물론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심지어 바다 건너 핀란드에서도 공연장을 찾았다. 하지만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숙제도 많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에서도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K팝을 진단하고, 향후 확산방안을 전문가들에게 물어봤다.
◆ K팝, 방송매체에도 진입해야
= 프랑스는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나라다. 그간 사랑 받아온 한국 영화도 이창동, 홍상수 감독의 예술 영화들이었을 만큼 주류 문화의 입맛은 깐깐하기 짝이 없다. 최근 '서유럽의 동아시아 대중문화 향유를 이해하기'라는 논문을 발표한 홍석경 프랑스 보르도대학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최근 프랑스 청소년들은 K팝에, 여대생과 직장 여성은 감성적인 한국 드라마에 빠져들고 있다"면서도 "아직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갈 길이 멀다"고 진단했다. 아직은 아날로그 문화의 힘이 큰 유럽시장에서는 "인터넷에 의존하고 있는 현재 K팝이 CD와 DVD 등의 음반과 공연 시장을 좌우하는 라디오와 방송 매체에도 진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현지 팬들은 K팝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3000여 명이 활동 중인 프렌치커넥션의 막심 파케 회장은 "한국 가수의 음악과 춤은 완벽하고 외모도 멋지다"면서 "유럽과 다소 다른 분위기도 매력적이라 적어도 5년 정도는 위력을 떨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한류라는 측면에서는 유럽이라는 새로운 대륙을 개척한 쾌거"라고 진단했다. 그동안 한류의 최종 목표는 미국이라고 여겨졌지만 유럽 시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됐다는 말이다. 그는 "이제 음악계는 유럽 현지에서 섬세하고 체계적인 홍보와 마케팅을 통해 이 흐름을 지속하고 확산시켜야 한다"면서 "현지 레이블, 전문가들과 꾸준히 만나고 유기적 관계를 맺어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한국 아이돌 경쟁력 해외서도 통해
= 고정민 한국창조산업연구소 소장은 "국내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안목 속에서 경쟁력을 기른 국내 아이돌들의 실력이 해외에서도 먹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트위터와 유튜브 등 SNS 덕분에 자생적으로 한류 팬층이 형성되며 우리 가수의 진출이 아닌 현지의 붐에 의해 자연스럽게 일어난 점이 고무적"이라면서도 "마니아가 애호하는 수준에서 대중화 단계로의 빠른 안착을 위해서 메이저 음반사 등 현지 유통망을 확실히 잡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아시아와 유럽에 이어 제3의 대륙을 찾는 것도 한류의 남은 과제다. 지난 9일 세계 최대의 SNS인 페이스북에 공식 소개된 SM타운의 팬페이지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팬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권을 비롯해 멕시코 칠레 아랍에미리트 등 남미, 중동, 아프리카에서도 대륙과 국적을 가리지 않고 몰려와 "제발 우리나라에서도 공연해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윤태진 연세대 언론영상대학원 교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예측하기가 어려워 예전에도 드라마 '겨울연가'로 한류가 인기를 끌 때 금방 꺼질 거란 논란이 많았다"면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프랑스에서만 인기가 있다면 예외일 텐데 알고 보면 남미에서도 K팝 인기가 있어 새로운 한류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우리나라 엔터테인먼트 산업 측면에서 자극제가 될 만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 한국문화 판로 개척 정부도 나서야
= 그동안 아시아 지역의 한류 콘서트를 기획해온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의 김경희 사무국장은 "인터넷을 통해 공급된 한류의 흐름을 넘어 문화산업 전파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번 공연이 일회성에 그치면 안 된다"며 "한국문화의 판로를 개척하려면 대중음악 관계자들의 역할만 기대할 게 아니라 정부 차원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이 '제2의 유럽'으로 꼽는 곳은 남미다. 김 국장은 "남미에서 K팝 공연에 대한 요청이 많지만 기획사 차원에서 추진하기엔 비용이나 위험부담이 너무 커서 정부 차원에서 한국문화를 전파할 수 있는 선제적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100억원을 투자하면 5~10년 내로 1조원이 넘는 파급효과가 돼서 돌아올 수 있는 것이 문화산업"이라고 지적했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은 11일 콘퍼런스에서 '한류 3단계론'을 제시했다. 1단계는 수출, 2단계는 합작, 3단계는 현지화라고 구분한 것이다. H.O.T가 중국 시장에서 인기를 끌던 때가 1단계 한류이고, 2006년 강타가 F4의 바네스와 결성한 '강타 & 바네사'가 2단계 한류다. 3단계는 2010년 SM이 준비하는 현지화 사업이다.
이 회장은 "한류의 3단계는 현지화를 통해 얻어지는 부가가치를 함께 나누는 것"이라며 "이것이 한류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한류의 중심은 일본이다. 국내 가수들은 중국에서 미래를 보고 뛰고 있었다. 이제 K팝은 좀 더 시야를 넓혀도 좋을 것 같다.
[김슬기 기자 / 이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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