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러니다”‥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니라면?
오디션 프로그램의 목적은 지원자의 음악성이나 개성의 평가가 아니다. 사실 새로운 스타의 탄생이다. 감동적인 스토리가 필요한 것은 어쩌면 이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한계이자 숙명이다. 장재인이라는 뮤지션의 본질은 이 같은 기준과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일 수도 있다.
“홍대에서 쭉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 스타일이 어느정도 이상은 잡혀 있었던 것이 사실이에요.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도 분명 확고했고요. 하지만 그런 모습들은 방송을 통해 ‘아마추어 인디’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 거예요. 그걸 벗으라는, 강요 아닌 강요를 경험했죠. 답답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어요.”
국내 최대 규모의 오디션을 통해 신데렐라가 된 장재인에게는 하루하루가 혼란의 연속일 수 밖에 없었다. 숨통을 조이는 듯한 답답함에 한발자국 이라도 움직여 피하고 싶었지만 어디도 마음 편하게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모습이 있고 저에게 듣고 싶은 음악이 있다는 걸, 그게 제 모습과 거리가 있다는 것도 인지하기 시작했죠. 물론 방송을 통해서 보여준 모습은 제 일부였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 일부를 아무리 모아도 전부가 되진 않았어요.” 장재인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모두 긍정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음악 세계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음악은 아이러니다”‥단순하지만 깊이 있게?
‘장난감 병정들’은 음악 자체에 온갖 종류의 상반된 아이디어들이 결합돼 완성된 작품이다. 드럼 프로그래밍에 참여한 DJ 소울스케이프는 옛날 LP들에서 최신의 디지털 방식으로 음원을 추출해 리듬 파트를 완성했고 멜로디는 복고적이라고 할 만큼 쉽고 단순하지만 사용되는 소스나 곡 전체의 구성은 가장 감각적이고 세련된 방식을 차용했다.
“해보고 싶은게 정말 많았고 배우면서, 작업하면서 그런 것들이 더 많이 생겼어요. 여러 아이디어들이 곳곳에 담겨 있죠. 그 중에 특히 좀 상반된 의미나 색을 결합시켜보려고 했어요. 예를들어 주제가 무거우니 곡은 최대한 가볍고 경쾌하게, ‘군무를 맞추네’라는 가사에는 막춤을 출 수도 있는 댄스 리듬을 쓰는 것 같은 거죠.”
이 작업은 비단 ‘장난감 병정들’ 한 곡에 국한되지 않는다. 실제로 조금만 더 귀를 기울이면 장재인이 노래 곳곳에 숨겨놓은 기발한 장치들이 수 없이 발견된다.
“이렇게 잔뜩 아이디어를 내서 곡을 만들고 앨범을 만들었는데 정말 듣는 분들이 그 하나하나를 다 발견할 수 있을까, 난 괜한 짓을 하고 있는걸까 회의가 들었던 적도 있어요. 하지만 당분간은 이런 시도들을 멈추지 못할 것 같아요.”
장재인은 몰래 숨겨놓은 장치들을 4~5가지 정도 귀띔했다. 물론 실제로는 이것보다도 더 많단다. 그것들을 하나씩 발견하는 것도 이 앨범을 듣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고 장재인이라는 뮤지션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 같다.
“세상은 아이러니다”‥다 다른데 왜 이리 똑같아?
타이틀곡 ‘장난감 병정들’은 특정 그룹의 이름이 언급되며 이들을 공격했다는 오해를 받은 적이 있다.
“생각 없이 군무를 추는 장난감 병정들을 통해서 획일화 되어 개성 없는 사람들과 틀에 박힌 세상에 대한 권태로움을 표현한 노래죠. 어느 아이돌 가수들을 비판했다는 것 보다는 방송 전체, 문화 전체에 대한 저 나름의 작은 분노라고 보시는게 더 정확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지금까지 겪은 어린 시절 학창시절 겪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봐야 가장 정확하죠.”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일찌감치 유명세를 탄 까닭에 이미 충분히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 지만 막상 자신의 노래를 들고 방송사 가요 프로그램에 나서니 몇 배 더 낯설고 혼란스러웠던가 보다.
“가요 프로그램에 가면 1위가 발표되기 전에 가수들이 모두 무대에 함께 오르잖아요. 그 순간 뭔가 이게 현실이란 걸 실감했어요. 이렇게 많은 가수들이 모두 다른 노래를 하고 있는데 어쩌면 이렇게 또 똑같을 수 있을까. 아이러니죠. 그러면서 나의 영역이, 내가 가질 수 있는 입지가, 이렇게 좁구나 라는 걸 깨달았죠.”
실제로 장재인의 입지는 장재인이 발을 딛고 서있는 땅의 넓이, 딱 그만큼이다. 장재인과 장재인의 음악은 어떤 주류 가수와도 심지어 비주류 가수들과 조차 다르기 때문이다. 갓 데뷔한 스무살 신인에게 이보다 더 놀라운 성취를 우리는 또 발견할 수 있을까.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사진 팽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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