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실체를 밝힌다 ‘모비딕’

문제의 정답이 무엇일까 궁리한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퍼즐을 맞춰나가야만 한다. 사건은 조작됐고, 은폐됐다. 어찌보면 이 문제가 수학 같기도 하고, 숨은 그림찾기 같기도 하다.
영화 ‘모비딕’은 복잡한 미로의 출구를 찾아 헤맨다. 열혈 사회부 기자 이방우(황정민)에게 풀릴 듯 하지만 풀리지 않는 문제를 풀게 한다. 정답이 없는, 아니 정답은 있는데 다가갈 수 없는 문제를 강요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1994년, 서울 근교 발암교에서 의문의 폭발사건. 이방우는 관심을 갖고 본능적으로 취재에 들어갔으나 허탕을 치고 만다. 그러다 오랜만에 연락이 온 후배 윤혁(진구)을 만났고, 윤혁은 이 사건이 조작됐다며 관련 내용이 담긴 자료를 방우에게 넘긴다.
조작된 사건을 쫓는 3명의 특별 취재팀. 사건을 치열하게 쫓아다니는 열혈 기자, 공대 출신의 똑똑한 신참 여기자(김민희), 따뜻한 인간미와 실력을 겸비한 지방 출신 기자(김상호)는 힘을 합친다. 개인 플레이어에서 팀 플레이어를 하려니 아귀가 맞지 않는 듯 하지만 어느새 완벽한 팀을 구성했다. 그들의 취재를 따라가면 감동과 재미가 동시에 전해진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건 뒤에 가려진 실체에 접근했다고 싶을 때 이들은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을 깨닫는다. 그런데, 이것이 호기심 많은 기자의 ‘본능’을 깨운다.
할리우드에서는 종종 볼 수 있던 음모론을 주제로 한 보기 드문 한국영화. 영화가 어떤 결론을 내놓을지, 어떻게 거대 집단의 모습을 벗겨낼 지 궁금해 하는 관객을 연신 긴장하고 집중하게 한다. 거대한 고래와 싸우는 허먼 멜빅의 소설 ‘모비딕’과 1990년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을 모티브로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도 관심을 촉발한다.
배우 황정민과 김민희, 진구, 김상호가 펼치는 연기호흡과 대결도 볼거리다. 건들거리면서도 특종에는 눈을 반짝이는 현업기자를 방불케 하는 황정민은 또 다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하다. 차가우면서도 똑똑한 신참 여기자 김민희는 겁도 없이 사건에 들이대고, 김상호는 헛헛한 것 같으면서도 알고 보면 속이 꽉 차있다. 내부고발자 진구는 자신을 쫓는 무리들을 따돌리며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을 선보인다.
탄탄한 이야기 구성 또한 영화를 시시하게 만들지 않았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과거 지향적이라는 점과 사건의 실체가 거대한 고래에 가로막혀 있는 것을 암시한 것처럼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다는 점이 못내 아쉽기는 하다.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적절한 소재였는지도 관객이 평가할 몫이다.
2003년 단편 ‘여기가 끝이다’로 제2회 미쟝센단편영화제 비정성시 부문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던 박인제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9일 개봉 예정.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