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한 김기영(1919~1998) 감독의 장남 동원씨가 26일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에서 가슴 벅찬 소감을 전했다. 김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알려진 ‘죽엄의 상자’(1955)가 발굴·복원돼 첫 선을 보인 자리였다.
동원씨는 “마치 돌아가신 아버지가 환생한 것 같다”며 “아버지께서도 생전에 데뷔작이라서 필름을 찾고자 노력했는데 찾을 길이 없었다. 하늘에서도 지금 기뻐하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죽엄의 상자’는 6·25동란에서 전사한 아들의 국군 동료라고 노모(김명순)와 누이(강효실)를 속인 인민군 빨치산 대원(노능걸)이 민심을 교란시키는 등 정치공작을 벌이지만, 누이의 연인인 경관(최무룡)의 활약과 희생으로 실패한다는 반공영화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지난해 10월 미국 메릴랜드의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이 필름을 발굴했고, 최근 NARA와 협의를 거쳐 2400여만원을 드려 35mm 프린트 복사 수집을 완료했다. 비록 음성이 유실돼 이날 공개된 영상은 화면과 정황으로만 파악해야 했으나 그 의미는 크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김종원 상임고문은 “소리가 빠져 절반의 성공에 그쳤으나 그 형태를 갖춰 김기영 감독 필모그래피의 중요한 한 부분을 채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 상임고문은 또 “6·25 전쟁 이후 뉴스 공급원으로서 ‘대한 뉴스’와 ‘리버티 뉴스’ 제작 출신의 비주류 영화인이 만든 극영화 데뷔작”이라며 “한형모 감독의 ‘성벽을 뚫고’(1949) 이후 처음 쟁점이 된 반공영화”라고 의미를 뒀다.
특히 “1950~60년대 주요 감독의 데뷔작이 한 편도 남아 있지 않는 상황에서 나온 성과라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다”며 한국영화의 역사적 의미도 전했다.
‘죽엄의 상자’는 1955년 제작됐다. 당해 6월 개봉, 적잖은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의대를 다니다가 철도병으로 인턴생활을 한 뒤 졸업 후 미공보문화원(USIS)으로 들어간 김 감독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오늘날 TV 보도기능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 ‘리버티 뉴스’를 만들었다. 이후 영화 ‘나는 트럭이다’를 비롯해 ‘수병의 일기’ 등 단편 수 편을 제작했다. ‘죽엄의 상자’도 미공보문화원에서 만들었다
동원씨는 “당시 문화원의 기자재가 최첨단이어서 이 영화를 만드는 게 가능했을 것”이라며 “우리 가족으로서는 무한한 기쁨이고, 또 우리나라 영화사에 커다란 의미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영상자료원은 ‘죽엄의 상자’ 이외에도 USIS가 제작한 김 감독의 문화영화 ‘나는 트럭이다’(1954), ‘수병의 일기’(1950년대 추정), ‘사랑의 병실’(〃)을 발굴했다. ‘발굴, 복원, 그리고 초기영화로의 초대’ 기획전을 통해 6월4일과 9일 대중에 공개된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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